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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02 조회수 : 584

9월2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코린토 3,1-9
루카 4,38-44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하며 자녀에게 순종을 기대한다면?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 사실 대부분이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
그 부족한 사랑을 내가 만나는 사람, 특히 새로 이룬 가정의 가족들을 통해 채우려 합니다.
특히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통해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자녀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용당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분명 누군가가 모기처럼 자기 피를 빨아먹고 있는데 그 모기가 엄마라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용당한 자녀는 커서도 또 다른 모기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 안의 악한 본성을 명확히 지적해주고
그것과 싸우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자녀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그 본성을 지적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행위가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심리 상담가 박우란씨의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에서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하루는 한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이대로 가면 도무지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찾아왔습니다.
항상 열심히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데 충분히 잘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하루를 견디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느 선을 넘어갈 수 없는데 그 선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여학생이 그토록 힘들어하는 데는 엄마의 태도에 영향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강요하거나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자율적으로 모든 것을 맡겨놓는 분위기로 말하지만, 딸은 숨이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말 안에 모호함이 있었습니다.
엄마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않지만, 그 때문에 딸은 더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넌 그걸 하고 싶니? 꼭 하고 싶다면 해. 근데 그걸 진짜 원하기는 하는 거야?” 
 
어느 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정확히 좀 말해줘.”
엄마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난 그저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그게 전부야.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남들이 하는 만큼은 어느 만큼일까요?
명확한 선을 지어주지 않으니 아이는 답답하기만 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뜻을 따라주고 싶습니다. 키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주는 밥을 먹고 그것이 고마워 부모의 뜻을 따라주며 여기까지 큰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에게 명확한 선을 그어주고 나아가야 할 바를 알려주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도 자신 안의 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이 명확합니다.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병에 시달릴 때, 예수님께서는 ‘열’을 꾸짖으셨습니다.
사람을 꾸짖지 않고 열을 꾸짖었습니다.  
 
사람 안에다 선을 긋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라져야 하고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 명확히 구분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자아를 명확히 구분하십니다. 
 
또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마귀가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람과 사람 안에 있는 악을 명확히 구분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구분하셔도 양심의 가책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자신 안에서 그렇게 선을 긋고 사시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신과 자아의 명확한 구분이 되어있지 않는다면 자녀도 그렇게 됩니다. 
 
‘고바라 스즈꼬’라는 사람의 『숨은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즈꼬는 부모로부터 ‘예!’라며 순종하는 것을 가장 큰 덕으로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요즘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서 순종하는 자식을 기대하는 것은 아주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할 수 없다면 주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자신 안에서 순종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래야 순종하는 자녀로 키울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선을 긋지 못하면 자녀에게도 그어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아버지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기에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선인지 자신 안에서 먼저 구분하지 못하면 자녀에게서도 선을 그어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먼저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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