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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8-31 조회수 : 653

8월3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1코린토 2,1-5
루카 4,16-30 
 
왕이 '된' 사람은 모든 이를 왕으로 대한다. 
 
미국에서 요즘 인종차별에 관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흑인 남성의 체포 과정 중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사하였고,
며칠 전에는 세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이 쏜 총 7발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블레이크는 비무장 상태였고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말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유학할 때도 유럽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중국 사람이라고 하면서 차별을 할 때는 기분이 더 나빴습니다.
그러며 ‘나도 중국 사람을 차별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겼을 때는 정말 조심해야 했습니다.
독일에 갔을 때는 어떤 사람이 어깨로 일부러 치면서 하이! 히틀러!를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것은 한국 사람들도 인종차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끼리 흑인을 지칭할 때는 ‘검둥이’, 혹은 ‘연탄’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백인들을 대할 때는 자세가 아주 달랐습니다. 
 
이런 인종차별은 어떠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어떤 필리핀 사람이 부자 동네 벽에다 인종차별을 하지 말라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마을 주민 부부가 이렇게 묻습니다. 
 
“여기가 당신 집인가요?”
필리핀 남성은 그건 왜 묻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사유 재산이거든요.” 
 
부부는 화장품 회사의 경영자였습니다.
그리고 낙서를 하는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부촌 퍼시픽 하이츠였습니다.  
 
한 필리핀 남성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동네 벽에다 그런 낙서를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낙서하든 뭘 하든 당신 맘인데 여기에 이렇게 하는 건 안 돼요.” 
 
필리핀 남성이 말합니다.
“만약 내가 여기에 살거나, 이것이 나의 사유 재산이라면 문제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내가 여기 살거나 여기가 내 사유 재산인지 당신은 모르고요.
​당신들이 여기에 살고 있군요, 그렇죠?” 
 
여자가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렇진 않지만, 여기에 누가 사는지 알기 때문이에요.”
상당히 부잣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필리핀 남성이 말합니다. 
 
“그럼, 여기 사는 사람한테 전화하든가 경찰한테 신고하세요.
​당신이 나를 범죄자 취급하니까요.” 
 
그러자 여자는 진짜로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왔다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갑니다.
​벽에 글씨를 쓰고 있던 남자는 그 집에서 18년째 살고 있던 필리핀 출신 제임스 후아닐로 씨였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 반대 움직임에 동참하고자 자신의 집 담벼락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글을 쓴 것입니다. 
 
백인 부자 동네에 아시아계 황인종이 살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에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라페이스라는 소규모 화장품 회사 CEO였던 리사 알렉산더는 ‘인종차별’이라는 거센 비난에 회사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도 닫아야 했습니다. 
 
차별의 원인은 ‘선입견’입니다.
그런데 그 선입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교만함’에서 옵니다.
자신이 그러한 위치에 있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백인으로 태어난 것이, 한국에 태어난 것이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일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고향 나자렛에서 박해를 받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30년 동안 보아오던 예수님께서 메시아일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 선입견은 그들의 생각이 옳다는 교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에겐 이 교만을 꺾을 수 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교만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믿음에서 나오기에 믿음만이 치료약입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광해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광대를 왕으로 앉힙니다.
광해는 그동안 사람들을 깔보는 권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양귀비에 중독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고, 천민인 하선은 오랜 시간 왕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자신이 정말 왕처럼 느껴졌습니다.
왕이 된 천민 출신 하선은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이나 빚에 팔려서 무수리가 된 사람들에게
다정히 대해줍니다. 그런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 같은 사람도 왕이 될 수 있다면, 당신들도 왕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왕이었던 사람은 자신이 그럴 자격이나 있어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사람도 귀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유는 잘나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있다면 사람을 차별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차별과 편견은 교만에서 오는 것이고 그 교만은 아직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열등감에서 옵니다.
열등감이 자존심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교만입니다. 
 
참다운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 안에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을 보고
존중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목마르다”라고 말하는 한 노숙자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도 믿기만 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 누구도 믿기만 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왕이 되었다면 누구에게 자랑하거나 누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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