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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29 조회수 : 554

나는 당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요한 세례자의 순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왕에게 잘못을 충언하다 목이 잘렸습니다. 
한두 번 이야기하고 그만두었으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겠지만, 워낙 성인들은 고집이 있어서 그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좋은 이야기를 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언자직인지, 나의 욕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충고를 해 줄 때, 이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나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요한 세례자의 경우를 보면 예언자직은 목숨을 잃을 때까지 옳은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대부분 예언자직이 아닌 말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녀나 남편 혹은 아내에게 어떤 것을 고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고쳐지지 않을 때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소리소리 지르다가 그래도 변하지 않을 때는 ‘내가 말을 말자!’라며 포기해버립니다. 
 
​이것은 예언자직이 아닙니다. 잔소리에 불과합니다. 나 편해지자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불편해지면 금방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직은 멈춤이 없이 목소리의 톤이 변하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한 번도 사제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게 사제가 되라고 결코 목소리를 높이신 적은 없었습니다. 
일이 년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죽하면 대학 입시 시험을 보러 가는 날, 떨어지라고 미역국에 달걀 반찬을 싸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설마 제가 대학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제가 신학교에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그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 다니면서도 제가 사제가 되는 것을 어머니는 끝까지 원하신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결국 25살 때 마음을 고쳐먹고 26살이 되어서야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잔잔하지만 지칠 줄 모르던 그 말씀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저를 바꾸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 뒤에 숨은 하느님의 뜻이 더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언자직은 “나는 당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을 바꾸시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잘 바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로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한 직업군인 크리스 브래니건(40)은 희소병을 앓는 하스티란 딸이 있습니다. 
하스티는 성장 지연, 골격과 행동 장애 등이 나타나는 코넬리아디란지증후군(CdLS)을 
진단받았습니다. 
 
​치료를 위한 기초 연구비만 40만 파운드(약 6억 2천만 원)가 듭니다. 
하지만 크리스는 딸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를 만들고 25kg의 완전 군장을 하고 맨발로 1,127km에 달하는 행군을 시작합니다. 
 
​발바닥은 찢기고 곪았습니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유리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37일 만에 소중한 딸을 만날 수 있었고, 목표액을 초과 달성하여 62만 파운드(약 9억 6천만 원)를 모았습니다. 
 
​크리스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딸을 위해 1,127km를 맨발로 행군한 아빠’, 비디오 머그, 유튜브] 
 
 
오늘 요한 세례자는 한 사람의 회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물론 실패한 듯 보이나 미래의 모든 세대 사람들에게 참 예언자직이 무엇인지 그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언자직은 잔잔한 울림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 예언자직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이 잔소리가 아닌 예언자직이 되려면 내가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람을 바꾸기 위해 나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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