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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8-26 조회수 : 703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2테살로니카 3,6-10.16-18
마태오 23,27-32 
 
절대 믿으면 안 되는 사람의 유형, 회칠한 무덤! 
  
사제에게까지 돈을 꾸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사제에게까지 돈을 꾸어야 할까요?
그래서 여력이 되면 다 꾸어주려고 합니다. 
 
​저는 차를 사려고 모으던 돈, 책을 찍으려고 모아놓은 돈 등을 모두 꾸어주었습니다.
이런 돈밖에 없다고 할 때 그 꾸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 꼭 갚겠다는 약조를 합니다.
그리고는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분들의 특징이 있다면 자기 확신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돈을 빌릴 때는 눈에서 빛이 나고 언제까지 갚을 수 있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사라집니다. 
 
이런 분들이 처음부터 사제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돈으로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상황이 힘들어 갚기가 어려운 걸겁니다.
그래서 저도 돈을 꾸어줄 때는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꾸어줍니다.  
 
다만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돈을 꾸어야 하는 목적이 있을 때는 자신 안에 갚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눌러놓기 위해 더욱 자신의 말을 확신으로 치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군인이었는데 지하실에서 못된 일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옷장과 책상은 지나칠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속이 썩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겉이 지나치게 깨끗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 좀 지나쳐 보이면 그것은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이기에 그 사람은 믿으면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상징적으로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십니다.
속은 시체로 가득 차 있지만, 이것을 가리기 위해서 겉에는 더 희게 칠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회칠한 무덤의 법칙을 아는 이들 눈에는 속이 썩어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믿어서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결혼과 같은 것일 때는 정말 큰 후회를 하게 됩니다.
결혼하기 전에 상대가 “자기, 나 믿지?”라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 절대 믿으면 안 됩니다.
회칠한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을 잘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람이 사람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습니까?”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줘야 사기를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돈을 빌리며, “언제까지는 기필코 갚겠습니다.”라고 확언을 한 사람 중에
얼마나 그 기일 안에 갚았나요?
그렇게 모든 게 확실한 사람이 왜 돈을 꾸어야 하는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기필코, 기어이, 꼭’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더욱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결혼해서 사시는 분들은 지금의 결혼 삶이 이럴 것이라고 아셨나요?
만약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란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회칠한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너나없이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렇게 확신한 사람들 순으로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예전에 제가 신학생일 때 어떤 신학생이
“난 빨개 벗겨서 여자들이랑 한 방에 들여놔도 끝까지 정결을 지킬 자신이 있어.”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 사람 안에는 정결하지 못하다는 양심의 비난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회칠을 하는 것입니다.
속이 검은 사람은 그 검은 것을 감추기 위해 겉은 더 밝은색으로 칠합니다.
이것이 사람들 앞에서 하는 자기 확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며 확언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들 속에서 그들이 자신을 모르는 회칠한 무덤과 같음을 보십니다.
그들 마음속에는 조상들보다 더한 더러움이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확신 속에서 그들의 교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하러 가려다가 벌레가 기어 다니는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으로 얻게 된 것은 사람은 착각하는 동물이기에 자기를 믿지 않게 되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외우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자기에 대한 착각만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나를 신뢰할수록 주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 이들의 것입니다.
주님만을 믿으려면 나의 나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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