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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8-13 조회수 : 620

8월13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에제키엘 12,1-12
마태오 18,21─19,1 
 
​은혜 갚을 절호의 기회, 용서! 
 
 
우리 대부분은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하면 ‘용서’는 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렇더라도 용서가 잘 안 되는 이유는 내가 주님께로부터 어떤 죄를 용서받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 용서하려고 하니 용서가 매우 혹독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평소에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용서할 기회를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죄를 용서하신 그 은혜를 묵상하면, 감히 ‘나도 용서할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튜브에 나오는 어느 결혼식 축사의 주요 내용을 약간 각색해 보았습니다.
동업자이며 한 살 어린 나이지만 삼 년 전 결혼한 선배의 결혼식 축사입니다. 
 
“진이 형. 십 년 전 우리는 결혼을 못 하든지, 아니면 축의금도 못 받고 몰래 결혼하든지,
둘 중 하나일 거라 했었지. 그때는 풀리는 일이 없었어.
그런데 결국 나도 삼 년 전에 결혼하게 되었고, 형도 지금 축의금 많이 받고 결혼하네. 앞으로 우리 열심히 일하며 갚아나가자. 
 
형이야 당연히 잘하겠지만, 결혼 선배로서 하나만 얘기할게. 형수랑 싸우면 대체로 형이 잘못한 경우가 많으니까 일단 사과해. 혹시 형이 생각했을 때 형 잘못이 하나도 없는 것 같으면, 그래도 사과해. 그게 남자고 남편이고 가장이며 우리 같은 사람과 결혼해주는 아내에 대한 보답이야. 좋은 기회잖아. 
 
그동안 한 번도 얘기 못 했었는데, 이 자리 빌어 이제야 얘기한다.
십 년 전에 나 오토바이 사고 나서 한 달 병원에 누워있을 때, 병원비 없어서 퇴원 못 하고 간호사들 눈치 보던 그때, 형이 친구니까 도울 수 있으니까 돕는 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밀었던 그 봉투, 내가 오늘 다시 가져왔다.  
 
그때의 나는 어리고 철도 없고 자존심만 세서 고맙단 말 못 하고, 그렇다고 안 받겠다는 말도 못 했지. 나중에 열 배, 백 배도 갚겠다고 큰소리만 쳤었는데, 딱 열 배 넣었다.
백 배는 앞으로 같이 벌자.
내가 책임지고 벌게 할게.
진짜로 고마웠다. 그동안 한 번도 잊어버린 적 없다. 
 
형, 형은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다.
주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그런 형이 선택한 형수라, 형수도 같은 사람인 거 같네. 여태 그래왔듯이, 세상 밝게 비추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 잘 살아.
2020년 5월 30일, 형 덕분에 이 자리에 서게 된, 00으로부터.” 
 
[출처: ‘신랑을 울게 한 친구의 반전 축사’, 유튜브 채널 ‘삼남 2인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은혜를 갚을 기회만을 노릴 것입니다.
축사한 동생은 십 년 전의 자신들의 처지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게 시집와 주는 것도 고맙고 그 결혼을 축하해주러 온 분들께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십 년 전 자존심 때문에 고맙단 말도 못 했던, 그러나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그 은혜에 대해서 형의 결혼식은 정말 ‘원수 갚을’ 절호의 기회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께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당연히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의 피로 그 지옥 불을 꺼주셨습니다.
만약 이 죄의 용서의 은혜를 믿기만 한다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제발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 좀 있어라!’ 하면서 기회를 노리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기회가 있으면 주님께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기쁘게 용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일만 탈렌트를 탕감받았으면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은 감옥에 집어넣는 사람이 나옵니다.
백 데나리온이 약 천만 원이라고 하면 일만 탈렌트는 육조 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당연히 이 은혜도 모르는 사람을 주님은 하늘 나라에 사시게 할 수 없으십니다.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자기만 아는 사람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있지 못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자비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유튜브에 보면 하부리그 축구 경기에서 결승 골을 넣은 선수가 하나뿐인 관객 앞으로 달려가 구십 도로 인사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응원하러 왔던 그 관객은 엉엉 웁니다.
바로 고양 시민축구단이 평창에 와서 경기할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일곱 경기 연속 패하기만 하던 고양 시민축구단을 응원하러 혼자 평창까지 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라대관씨는 먼 길을 혼자 달려와 목이 터지라고 북을 치며 응원했습니다.
선수들은 골을 넣자마자 하나뿐인 그 관중에게 달려갈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억지로 노력해서 용서하는 것도 분명 큰일입니다.
그러나 평소 주님의 은혜에 대해 깊은 묵상을 했다면 용서를 할 기회를 찾는 것은 더 큰 일일 것입니다.  
 
어차피 용서할 것, 주님께 더 보답해드리기 위해
‘용서를 은혜 갚을 절호의 기회’로 노리며 삽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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