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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8-12 조회수 : 568
8월12일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에제키엘 9,1-7; 10,18-22
마태오 18,15-20 
 
​결속력이 사랑 기반인 공동체의 특징 
 
 
오늘 복음은 ‘교회에 죄의 용서 권한이 있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죄인인 형제가 교회의 말까지 듣지 않으면 그를 이방인 취급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결정이 곧 하늘의 결정인 것입니다.  
 
이를 확증하시기 위해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죄의 용서의 권한인 ‘하늘 나라의 열쇠’가 교회에 있음을 천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도 성령을 내어주시며 이 지상에서 사도들이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죄의 용서의 권한의 근저에는 교회공동체의 결속력이 하느님의 ‘사랑’ 때문임을 말합니다.  
 
모든 공동체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공동체를 모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회사도 하나의 공동체라 한다면 그것은 돈이라는 힘 때문에 모인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로 부르기보다는 ‘집단’으로 부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삼국지’에서 두 공동체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평화로운 한 마을에 느닷없이 군인들이 나타나 남자들을 끌어가서 목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죽은 남자들의 목을 수레에 달아 질질 끌고 다닙니다.
옆에 있던 대신이 장군에게 물어봅니다.  
 
“아니, 저 백성들을 왜 죽였습니까?”
장군은 말합니다. “심심해서!”
이 사람이 삼국지의 ‘동탁’입니다.  
 
동탁은 이렇게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나라를 장악한 인물입니다.
물론 그 나라가 평화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황건족과 같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조조와 같이 그를 살해하려는 시도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동탁 옆에 있었던 호위무사 ‘여포’ 때문이었습니다. 
 
동탁은 어떻게 죽게 될까요? 여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임금을 볼모로 잡은 동탁의 폭정을 보다 못한 왕윤이란 신하가 임금을 구해내기 위해 계략을 핍니다.  
 
자신의 딸처럼 아끼는 ‘초선’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초선은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명입니다.
왕윤이 초선에게 말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거라.
내 이제 너를 여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동탁에게 바칠 생각이다.
네가 할 일은 저들 사이에서 이간질하여 여포가 동탁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다.” 
 
초선은 잘 해냈고 여포는 자신의 여인을 빼앗은 동탁을 죽여버립니다.
두려움으로 뭉친 집단은 더 큰 두려움이 찾아오면 와해되기 십상입니다. 
 
이와 상반되는 공동체를 만든 사람이 ‘유비’입니다.
유비는 귀족 출신이긴 했지만 가난하여 시골에서 돗자리를 짜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장비와 관우와 힘을 합쳐 도적 떼로 변해버린 황건적을 토벌하는 의병이 됩니다.
그의 명성이 점점 커지자 동탁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게 된 조조가 그 싹을 잘라버리려 합니다.
도망만 다닐 수 없었던 유비는 전쟁의 신이라 불리게 될 ‘제갈공명’을 찾아갑니다.  
 
제갈공명은 산 밑에서부터 걸어서 자신을 만나겠다고 세 번째 찾아오는 유비를 만나줍니다.
제갈공명을 얻게 된 유비는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제갈공명은 자신에게 그렇게 머리를 조아린 유비를 처음엔 잘 신뢰하지 못하다가 한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유비가 자신의 아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일이었습니다.  
 
유비의 두 아내가 조조 군의 진영에 고립되어 있을 때 조자룡이 끝까지 찾아내어 아들을 구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자룡은 상처를 입습니다.
유비는 아기를 집어 던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까짓 어린 자식 하나 때문에 하마터면 내 큰 장수를 잃을뻔했구나!”
이에 조자룡은 깊은 절을 하며 이렇게 맹세합니다.
“자룡은 이제 간과 뇌가 땅에 으깨어지기까지 주공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갈공명도 이런 사람이라면 자신도 목숨을 바쳐도 될 것이라 믿게 됩니다.  
 
시골 돗자리 장수였던 유비는 이렇게 사람을 모을 줄 알아,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와 함께 촉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유비는 관우를 살리기 위해서도 자기 목을 내어놓습니다.
처음부터 유비와 하나가 된 사람들은 유비의 사랑의 힘 때문에 모인 이들입니다.
그렇게 아들까지 집어던질 정도로 자신의 공동체를 사랑했다면 당연히 목숨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집어 던져 십자가에 매달으시며 교회라는 공동체를 모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아드님의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모으신 이들을 위해 죄의 용서 권한을 주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위해 아드님을 주셨다는 것은 ‘다’ 주셨다는 말입니다.
결속력이 사랑 기반인 공동체의 특징은 모든 것을 청할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통한 죄 사함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사랑에 감동하여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조자룡의 이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간과 뇌가 땅에 으깨어질지라도 주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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