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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03 조회수 : 618

8월3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예레미야 28,1-17
마태오 14,22-36 
 
​자기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요즘 코로나 때문인지 우울증 비슷한 무기력감에 빠졌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좀 시작해보면 어떠실까요?”라고 말하면,
“옛날에 다 해 봤어요. 지금 제 환경에서는 불가능해요. 안 돼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삶이 우울해요. 무기력해요. 나이만 먹고 있어요!”라고 또 말합니다.
어쩌라는 말입니까? 
 
삶의 에너지는 ‘행복을 좇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가젤을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표범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표범에 잡히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도망치는 가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행복은 생존입니다.
그 행복에 다다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삶의 활력입니다.
행복을 향한 목표 없는 삶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안 돼!”라는 원죄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되찾고 지금의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는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은 것은 그 법칙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톰 빌리유’는 연설가요 퀘스트란 다이어트 식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대표입니다.
그는 병적으로 뚱뚱한 집안에서 자라 엄청난 뚱보였습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어머니는 패스트푸드를 들고 계셨고 누나는 살에 묻혀 몸조차 가누지 못한 채 침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물론 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먹는 유일한 야채는 패스트푸드 안에 있는 양상추가 전부였습니다.
매일매일 나빠지는 건강상태를 보며 죽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매일 운동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권고하는 대로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운동량’만을 지속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몇 달을 꾸준히 운동했으나 체중이 더 늘었습니다.
운동하니 그 만족감에 식욕이 더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나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도전으로 몸과 마음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톰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만연한 비만이라는 질병과 싸우기 위해 ‘퀘스트’라는 식품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경험 부족으로 연속적인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난이었고 ‘너무 큰 목표를 꿈꾼 것은 아닌가?’라는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문득 엄마와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는 퀘스트 시제품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래, 아직 더 버틸 수 있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버티고 노력하다 보니 누나는 회사가 시작한 시점에서 54kg을 감량했고, 회사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으려 하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삶의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
[참조: ‘자신의 임계점을 찾는 법’, 유튜브 채널 ‘체인지 그라운드’]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법칙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선 ‘더 나아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것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 싶어야 행복을 바라는 것입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성취에 목마르고 배고파야 합니다. 
 
그다음은 내가 바라는 행복을 긍정해주는 이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 안에는 무조건 “넌 안 돼!”라고 말하는 자아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무조건 순응하게 태어납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이를 찾아야 합니다.
‘믿음’을 주는 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긍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믿고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면 됩니다. 
 
그러나 처음엔 잘 안 됩니다.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살을 조금 뺐는데, 살이 빠지기 시작한 것은 저의 생각을 바꾸었을 때부터입니다.
저는 살을 빼는데 ‘음식 20%, 운동 80%’만큼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과는 반대로 ‘음식 80%, 운동 20%’임을 알았을 때부터 살이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먼저 물 위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으셨다면 감히 물 위로 뛰어내릴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넌 할 수 있어!”와 “어떻게?”가 함께 와야 합니다.
이것을 ‘은총과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긍정의 은총과 방법의 진리를 알려주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는 것은 ‘꾸준함’입니다.
베드로는 물 위에서 비틀거립니다.
우리 믿음은 한순간에 크지 않습니다.
‘성장’합니다. 톰 빌리유가 어머니와 누나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믿음을 지속시킬 수 있었듯
우리도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실패에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 목표에 다다를 날이 있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살아야 진정한 삶입니다. 의욕을 가지려면 행복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평생 목표, 10년 목표, 1년 목표, 하루 목표를 정합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한번 해 보라고 명령하십시오.”라고 기도합시다.  
 
그분은 항상 “해 봐!”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요?”라고 물으십시오.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젠 비틀거리며 믿음을 성장시키고 확인해가는 일만 남습니다.
이 메커니즘에 자신을 결속시킬 수 있어야 참으로 활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처럼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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