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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30 조회수 : 789
7월30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18,1-6
마태오 13,47-53 
 
하늘나라가 그물인 이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 나라는 밭에 묻힌 보물이고 밀과 가라지와 같고 밀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는 것과 같고 겨자씨가 나무로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하늘나라의 여러 비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다른 비유 말씀들의 결론과 같은 것으로서 하늘나라가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물고기를 그 종류별로 가려서 어떤 것들은 하늘나라로 어떤 것들은 지옥으로 던져버린다는 뜻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닙니다.
자세히 보면 하늘나라가 그물로 잡은 좋은 물고기들이 가는 종착지가 아니라 하늘나라를 ‘그물 자체’라고 말합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의 하늘나라에는 좋은 물고기도, 나쁜 물고기도 들어와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이들은 밀과 가라지처럼 마지막 때에 쫓겨날 수는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악한 물고기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늘나라가 그물로 잡은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가는 행선지가 아니라 그물 자체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프링 벅’(Spring Bog)은 아프리카 남서부 지역에 서식하는 영양 가젤의 일종입니다.
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집단으로 생활하는 스프링 벅은 한 번에 3m이상 높이 뛸 수 있고 시속 88km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첩한 그들이 집단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죽거나 강물에 휩쓸려 죽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그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조한 풀을 무리가 함께 뜯어먹다 보니 뒤처져 뜯어먹는 스프링 벅들은 이미 앞서간 스프링 벅들이 먹은 잔풀만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동할 때는 먼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재빨리 달려야만 합니다.
만약 몇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뒤에 있는 것들은 이번엔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더 빨리 달립니다.
그러다 절벽이 나타나거나 강물이 나타나서 멈추려 해도 뒤에서 달려오는 것들 때문에 멈출 수가 없어 밀려버리는 것입니다. 
 
스프링 벅의 이야기와 ‘그물’로 비유되는 하늘나라의 비유를 비교해 봅시다.
만약 스프링 벅을 그물로 잡을 수 있다면 그것들이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더 먹기 위해 달리고 싶은 욕구를 잃습니다.
여기저기로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잃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더는 펼칠 수 없게 됩니다.
하늘나라를 ‘그물’로 비유하신 이유는 하늘나라가 바로 힘이나 속력이 아닌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무엇이 방향이냐면 ‘욕구’가 방향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욕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은 더는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하느님은 그런 물고기는 놓아주십니다.
그 좋은 예가 ‘가리옷 유다’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물고기, 나쁜 물고기 가리지 않고 당신 안에 모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욕구를 버리지 못하면 예수님은 놓아버리십니다.
사람이 두 방향으로 동시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방향에 우리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고 그 방향에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육신-마귀의 이전 욕구를 끊어야 합니다.  
 
두 상반된 욕구를 동시에 따를 수는 없습니다.
내 이전 욕구를 버리고 하느님 욕구를 따름으로써 내가 변화하게 됩니다. 
 
한 중학교에서 도덕 선생님이 사춘기가 된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30일 동안 칭찬하고
일기를 써 오라고 숙제를 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도 쑥스럽고 부모도 쑥스러워했습니다.
30일 동안의 부모를 칭찬하기 위해 아이들은 비로소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한 달 동안의 감사를 위한 노력이 끝나고 아이들은 “그냥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이었는데, 요즘 집이 좋아요.”,
“칭찬을 마친 내가 참 대견스러워요. 나도 참 괜찮은 사람 같아요.”,
“부모님을 칭찬하면서 나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참조: ‘엄마가 울었다’, 지식채널 e, 유튜브] 
 
 
나의 변화는 하느님 뜻인 그분의 방향성에 나를 맡김으로써 가능합니다.
이전에 내가 추구하던 삶의 방향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를 돌려세워야 합니다.  
 
이 욕구의 변화가 곧 방향의 변화이고, 그 방향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하늘나라에 머무는 길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적 이야기를 하면 극단적 이원론자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느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신데, 그 자비하심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사이비처럼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조장한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옥만이 아니라 불과 사람을 파먹는 벌레, 심지어 불소금에 절여진다고까지 하십니다.  
 
이원론이 아니라면 우리 종교는 그저 마음의 평화를 주기 위한 상담이나 심리학을 말하는 집단이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그물’로 표현하신 이유는 내가 튀어 나가려는 이전의 방향성을 제한하고 당신의 방향성에 우리를 묶어두기 위함입니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지옥에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그 자유로움을 주님께 봉헌하여 하늘나라에서 끝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위로를 받기 위해 나오는 곳이 아니라 그 방향성을 꺾고 주님의 방향에 나를 맡길 힘을 얻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욕구도 좋고, 저 욕구도 좋다는 식의 흐리멍덩한 가르침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물’이기에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이라는 한 방향에 나를 맡길 수 있는 사람만
머물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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