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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25 조회수 : 631

7월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토 4,7-15
마태오 20,20-28 
 
사랑하는 만큼 마시기! 
 
 
하늘 나라에도 좋은 자리 나쁜 자리가 있을까요? 
하늘 나라 자리는 다 좋을 것입니다. 
그래도 더 좋은 자리가 있고 덜 좋은 자리는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는 주님의 계명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주 작은 계명 하나라도 어기도록 가르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는 분명 하늘 나라에서 주님과 가까운 자리가 있고 먼 자리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비롯된 청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들어오면 똑같이 행복할 것이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당신의 잔을 얼마나 마시느냐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당신이 메어주시는 멍에를 얼마나 충실히 메고 순종했느냐에 따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만약 다 마시지 못한 잔이 있다면 어쩌면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헤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디스커버리’(2017)는 사후세계를 다루었습니다. 
한 과학자가 사후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이 발견(디스커버리)은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수백만 명이 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과학자는 연구를 계속합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은 증명해 냈지만, 사후세계가 어떠한 모습인지는 증명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한실에 있는 시체를 훔쳐서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영상으로 출력하려 하였습니다. 
 
그 시체의 머릿속에서는 차를 달려 어떤 병원에 도착한 자신의 모습이 영상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저승 세계에서 체험하는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사람의 인적사항을 조사해 그의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시체가 병원에서 보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시체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과 정반대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놈은 어머니가 병들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어요. 
부모를 버리고 도망친 놈입니다. 만약 그 애가 병원에 찾아왔었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에요.”
시체는 사후세계에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사가 이것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가서 자신의 뇌를 영상으로 촬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아내가 자살하던 날 자상한 남편이 되어 아내와 함께 있어 주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사후세계는 결국 이 세상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에 갇혀 그것을 되돌려 놓으려는 안타까움만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지옥이란 바로 그 후회스럽고 용서받지 못한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억을 지워주시기 위해 우리가 내미는 쓰디쓴 잔을 마시셨습니다. 
 
일반 대학교 다닐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자매에게 건배를 권하며 “사랑하는 만큼 마시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 마셨다는 뜻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술잔을 뒤집었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서 아직 마시지 못하고 있는 저의 술잔을 응시하였습니다.  
 
저도 기쁜 마음에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머리에 부었습니다.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잔에 조금이라도 술이 남으면 그만큼 관계가 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이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상대가 따라준 쓰디쓴 술잔을 쥐고 있습니다. 
그 잔은 처음엔 쓰지만, 끝은 달콤합니다. 
마시기 싫어도 상대가 주는 잔을 마실 수 있다면 관계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드리는 잔을 다 마시셨습니다. 
우리를 절대 죄책감의 굴레에 빠져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각자에게 잔을 내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만큼 마시면 됩니다. 
마시고 남은 양만큼 하늘나라에서 그분과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미는 잔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잔은 평생 그 잔을 마시는 것에만 집중해도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후회스럽지 않게 죽음을 맞으려면, 
하나도 남기지 않을 마음으로 최대한 많이 마시고 그분 앞에서 머리에 술잔을 부어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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