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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24 조회수 : 635

7월24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예레미야 3,14-17
마태오 13,18-23 
 
​메뚜기가 될 것인가, 청개구리가 될 것인가? 
 
오늘 복음은 다시 ‘씨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길과 돌밭과 가시밭에 뿌려진 씨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좋은 밭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 열매는 ‘행복’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뿌려주시는 말씀도 또한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씨앗 안에 행복의 열매가 있음을 믿지 못하고 허튼 데에 정신을 쓰는 데 있습니다. 
 
벼가 익어갈 무렵 한 시골 중고등부 주일학교 수업 때의 일입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은 3명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주일학교를 계속 나올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솔직하게 나오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공부는 왜 하려고?”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유명한 사람 되려고요.”,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애인 얼굴이 바뀌어요.”,
“돈 많이 벌어 부모님 호강시켜드리려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은 “만약 그렇게 되면 행복할 것 같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존심이 상한 듯, “성당은 따분해요. 어렸을 때부터 성당 다녀도 전해 행복하지 않아요.
아버지는 ‘성당 다닌다고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라고 말해요.
맞는 말 같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님은 “오늘은 용을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창호지로 멋진 용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철사로 틀을 만들고 창호지를 조심스럽게 붙이고 그림을 그려서
멋진 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부님이 메뚜기를 각자 한 마리씩 잡아 오라고 시켰습니다.
메뚜기를 잡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용의 배 부분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의 메뚜기를 그 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리 부분에 메뚜기가 빠져나오기에 충분할 만큼의 구멍을 뚫었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메뚜기들이 이 종이 용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니?”
아이들은 한결같이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메뚜기들은 그 강한 발과 턱으로 종이를 뚫기 위해 사정없이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은 지쳐 쓰러져 죽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메뚜기들을 무식하다고 놀렸습니다. 
 
신부님은 미리 잡아두었던 청개구리 몇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용의 배 밑으로 그 청개구리를 넣고 막았습니다.
청개구리들은 뛸 생각도 안 하고 엉금엉금 기어 입과 꼬리 부분으로 다 빠져나왔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유명해지면, 예쁜 여자와 결혼하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라 믿지?
이것이 메뚜기와 같은 생각이란다.
너희 힘을 너무 믿는 나머지 뚫을 수 없는 창호지를 머리로 계속 들이박는 거야. 그런 것이 행복이라는 믿음은 너희 안에 있는 탐욕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것이란다.  
 
너희가 아는 명예를 얻어 유명해진 사람 중에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지?
결혼한 사람은 다 행복해 보이니? 또한,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란다.
너희들은 청개구리가 될 필요가 있어. 그런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야 해.  
 
우리나라에서는 청개구리는 시키는 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 너희들이 메뚜기처럼 사는 대부분 친구와는 다른 청개구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당 다닌다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너희를 메뚜기로 만드는 세상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는 있지.  
 
성당은 청개구리가 되는 지혜를 주는 곳이란다.
너희에게 행복의 열매가 열리는 결과는 너희가 메뚜기와 청개구리 중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어.” 
 
아이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성당에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아라는 용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이 헛된 꿈을 조장합니다.
그렇게 교만해진 우리는 결코 뚫을 수 없는 행복을 얻겠다고 머리가 깨지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 ‘길의 교만’과 ‘돌밭의 육욕’과 ‘가시밭의 물욕’에서 벗어나야만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어디에 머리를 들이박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키가 크지 못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초등학교 때 밥 먹는 것보다 축구 하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점심시간에 남들 밥 먹을 때 저는 혼자 공을 들고 운동장에서 놀았습니다.
그때 끼니를 거르면 키가 안 큰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그때 행복한 것에 집중했을 뿐이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그렇게 키가 커야 할 시기는
그렇게 지나버렸습니다. 
 
우리 삶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창호지를 뚫는 데 쓸 것인지 그것에게서 벗어나는 데 쓸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허튼 데에 에너지를 쓰면 열매를 맺을 에너지는 남지 않게 됩니다.
참 행복은 메뚜기와 같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청개구리와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겸손하게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진리란 참 행복은 세속-육신-마귀 자아의 욕망에서 벗어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30배, 60배, 100배의 행복을 누리려면 메뚜기의 삶을 버리고 청개구리의 삶을 택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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