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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22 조회수 : 359

어떤 부부가 주일미사 참석을 위해 성당에 함께 가다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강도는 더욱더 강해졌습니다. 남편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이런 기분으로는 도저히 성당에 못 가겠어. 나는 골프장에나 갈 거야.”라고 말하고서는 성당에 가지 않고 곧바로 골프장에 갔습니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골프를 쳐서 그랬을까요? 남편이 골프를 치다가 뒤땅을 쳐서 갈비뼈가 골절되었습니다. 이때 아내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봐! 성당 안 가고 골프장에 가니 저렇게 다치지. 꼴 좋다!!”

이렇게 말했을 때 남편이 과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뉘우치며 회개할까요? 아마 앞으로 성당에 안 갈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만약 아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여보, 미안해요. 당신을 화내게 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때 남편이, “맞아!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할까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겠지요.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성당 대신 골프장에 간 내가 잘못이지. 내가 미안해.”

이렇게 말하면서 진짜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회개의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 대신에 원망과 분노를 상대방에 표현하면서 서로의 간격 차이를 더욱더 넓혀놓습니다. 진정으로 서로의 간격을 좁힐 방법은 상대방의 단점이나 잘못된 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간직하고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께 대한 실망으로 떠나갈 때, 그녀만이 예수님을 지켰고 그래서 예수님 무덤까지 찾아갑니다. 이 사랑으로 주님과의 간격은 더욱더 가까워졌습니다. “마리아야!”라는 부르심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만약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불평과 원망의 이유로만 바라봤다면, 주님의 부르심과 명령을 들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사랑으로 받아들였기에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가서에서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아가 3,4)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찾는 사람은 바로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찾는 사람으로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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