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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18 조회수 : 607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미카 2,1-5
마태오 12,14-21 
 
옳은 말만 하는데 재수 없는 사람 
 
 
제가 말로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용기를 드리려 해도, “당신이 나처럼 죽음 직전에 있나요?”, 
“당신이 나처럼 가난하나요?”, “당신이 나처럼 자녀를 잃어 보셨나요?”라고 말할 것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때조차 “그래도 용기를 내셔야죠!”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분들에게 재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말은 ‘끌어 올리는 말’이 있고 ‘밀어 올리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끌어 올리려고 하는 말은 재수 없고, 밀어 올리려고 하는 말은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듀크 신학대학교에서 만난 앤지와 퍼시라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해 말하다가 
퍼시가 앤지에게 대학교 때부터 좋은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앤지가 퍼시에게 “그러면 당신의 이웃은 누구야?”라고 되물었습니다. 
그 후 몇 주간 퍼시에게서 앤지의 질문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앤지와 퍼시는 아파트를 떠나 리치몬드 처치 힐 중심가에 있는 오래된 도심지로 이사했습니다. 
처치 힐은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쇠퇴한 소위 할렘가였고 흑인들만 거주했으며 많은 이들이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 그야말로 비참한 곳이었습니다. 
 
퍼시와 앤지는 먼저 어린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퍼시는 농구공을 들고 아이들에게 농구를 시작했고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름을 외웠습니다. 
조금씩 처치 힐 사람들은 그를 친구로 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백인들처럼 그들을 범죄자로 보지 않고 이웃으로 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네 아이들은 퍼시의 뒤를 따라왔고, 퍼시와 앤지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비디오 게임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15명이나 퍼시의 귀가를 기다리며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은 퍼시와 앤지가 자신들의 숙제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퍼시와 앤지는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는 것이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믿고 집을 개방하여 아이들이 원할 땐 언제든지 그 집에 올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에게 파티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지역 주민들은 퍼시와 앤지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백인 커플이 자신들의 동네에 들어와서 아이들에게 헛된 꿈을 심어주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는 퍼시를 자신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사복경찰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퍼시와 앤지는 굽히지 않고 자원봉사자까지 구해 더 많은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2002년 CHAT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CHAT은 상주직원 45명과 자원봉사자 수백 명, 운영예산 25억 원의 기관으로 성장했고 지난 13년 동안 아이들 공부방을 시작으로 처치 힐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참조: ‘유쾌함의 기술’, 앤서니 T. 디베네뎃, 유튜브 ‘책한민국’] 
 
앤지와 퍼시는 소위 사회적 ‘루저’(Looser)가 되어버린 동네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고 있던 백인사회에 속해있으며 그들에게 설교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들도 우리 백인들의 도시처럼 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그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재수 없어!” 
 
퍼시와 앤지 커플은 말은 자신의 위치에 따라 용기를 줄 수도, 재수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높은 위치에서 마치 밧줄을 내려주며 잡고 올라오라고 하는 말이 있는가 하면,
아래로 내려가 자신의 등을 밟고 올라서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위에서 하는 말은 재수 없고, 밑에서 하는 말은 힘과 희망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부류의 말씀이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없애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그들의 박해에 대해 “감히 하늘의 왕에게 이런 대접을?” 하며 분개하지 않으셨습니다. 
숨고 숨어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박해받는 분이 되셨습니다. 
분명 올바름을 선포하셨지만, 그 말씀은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말이 아닌, 사람들을 떠받쳐 올려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의 말씀은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저는 말을 많이 하므로 재수 없는 잔소리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핍박을 받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분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1998)는 의대의 엄격한 규율을 깨고 환자들의 눈높이를 맞춰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결국 자신의 이상에 꼭 맞는 병원을 설립한 헌터 아담스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지 않고 웃음을 주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여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나의 말이 잔소리가 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려면 내 목소리가 그들의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들리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그들보다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말에 힘은 그 내용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위치가 결정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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