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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15 조회수 : 731

7월15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야 10,5-7.13-16
마태오 11,25-27  
 
똥파리는 꽃밭의 한 무더기 똥을 보며 꽃밭을 안다고 말한다 
 
 
가끔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분들은 “나도 그 사람 알아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많은 경우에 그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자신이 아는 단점을 쏟아냅니다.  
 
그 사람의 단점만 말하며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완전히 모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밭에 어떤 짐승의 똥이 있습니다.
그러나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그 똥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기를 지나가던 한 똥파리가 좋은 똥을 발견하고는 동료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나 그 꽃밭 잘 알아. 좋은 똥을 발견했어!”
꽃밭에 있는 작은 똥 무더기가 그 꽃밭을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 안에 있는 단점들을 몇 가지 안다고 해서 그 사람 전체를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엔 꿀벌이 날아가다가 그 꽃밭을 봅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가서 말합니다.
“나 그 꽃밭 잘 알아. 좋은 꿀을 발견했어!”
물론 그 꽃밭 안에 있는 작은 똥 무더기는 알지 못합니다.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본질이 ‘꽃밭’이기에 똥파리보다는 꿀벌이 그 꽃밭을 잘 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꽃은 더러운 습지에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그 습지를 보지 않고 그 꽃의 아름다움에 빠집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가서 연꽃을 보았다고 말하지 시궁창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둠을 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발견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보시지 않고 우리 선한 면을 보시며 키워주십니다.
우리는 똥파리가 아니라 꿀벌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를 똥파리로 만듭니다. 
 
아담은 하느님을 보면서도 하와를 왜 만들어줘서 죄를 짓게 만드느냐고 한탄합니다.
완전한 선이시고 아름다움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분에게서 더러운 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을 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떻게 빛 가운데서 어둠을 찾아내고 하느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가장 많이 사랑하시는 부모를 잘 아는 때는 언제일까요?
아이일 때일까요, 아니면 사춘기 반항의 시절일까요? 
 
제니스 캐플런의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에 이런 예가 나옵니다. 
 
한 어머니는 15살 아들을 비싼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에 보내며 고마운 마음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전화를 걸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뭘 고마워해야 하는데? 애들을 캠프에 보내는 것은 부모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야?”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한 어머니는 딸을 학교에 차로 태워다주며 그 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애잖아. 운전을 못 하니까 당연히 엄마가 데려다줘야지!” 
 
사춘기 아이들은 무엇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바로 엄마의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커져 버리면 눈이 멀어 사람 안에서 사랑을 찾아낼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안다고 믿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 자신도 부모가 되면 그제야 겸손해져서 부모의 마음을 볼 줄 알게 됩니다.  
 
가수 김진호 씨의 ‘가족사진’처럼 부모가 자신들을 위해 거름이 되어주었음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부모님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부모가 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것만 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누군가를 제대로 알게 될 때 나오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아담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불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온전히 아시는 분이시기에 항상 감사하십니다.
그것이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사춘기 때는 그 감사를 잊기 쉽지만, 어린이는 부모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할 때 아는 것입니다. 사랑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똥파리가 아니라 꿀벌입니다.
사랑을 보고 감사해야 그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린이와 같은 사람은 이 사랑의 선물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그 주시는 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사랑을 볼 눈을 잃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보아도 잘못 보게 됩니다.
그 증거로 감사가 사라집니다.  
 
아버지의 철부지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에 집중합시다.
아는 만큼 감사해합니다.  
 
모든 사람 안에 어느 정도씩은 사랑이 있으므로 반드시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해 감사해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안다고 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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