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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10 조회수 : 690

7월10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호세아 14,2-10
마태오 10,16-23 
 
하느님 앞에서 비둘기가 될 때 세상에서 뱀의 지혜를 발휘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은 양이고,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이리입니다.
이리들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양들이 살아남으려면 지혜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여기서 뱀은 죄를 짓게 만드는 본성이나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슬기와 지혜를 갖추어 위험한 이리들의 덫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뱀처럼 슬기로울 수 있을까요?
하느님 앞에서 비둘기처럼 순박할 수 있으면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비둘기일 수 있어야 사람들 앞에서 뱀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비둘기이면 하느님 앞에서 뱀이 됩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하느님께 순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람들 앞에서 지혜롭습니다. 
 
로마의 건국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 ‘퍼스트 킹’(2020)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로마는 늑대로부터 키워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형 로물루스는 신을 공경하는 인물이었고 동생 레무스는 자신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육체적으로는 약했고 동생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형제는 매우 우애가 깊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주저 없이 목숨을 내던질 정도였습니다. 
 
기원전 753년, 두 형제는 그 지역의 가장 강력한 민족 알바롱가 인들에게 사로잡힙니다.
알바롱가 인들은 자신들이 사로잡은 이들을 서로 싸우게 해서 지는 사람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동생이 누군가와 싸움을 해야 했을 때 형은 자진해서 동생의 상대가 됩니다.
일부러 맞아주다가 죽은 척을 합니다.  
 
죽은 척을 하다 일어난 로물루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여사제인 신녀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녀를 인질로 잡고 나머지 포로들과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형 로물루스는 심한 상처를 입어 죽음 직전까지 다다릅니다.
신녀를 건드려서 자신들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커지자 동생 레무스는 목숨을 걸고 형을 지킵니다.  
 
그 와중에 신처럼 강한 힘이 자신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된 레무스는 그 무리의 왕이 됩니다.
레무스는 자신의 힘을 믿고 사람들을 제압하며 세력을 키워갑니다. 
 
그러는 중에 신녀가 예언을 합니다.
두 형제가 한 형제를 죽이고 그 피의 힘으로 영원한 도시 로마가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당연히 동생 덕에 간신히 생명만 부지하는 형이 동생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동생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런 예언을 한 신녀를 처형합니다.
자신이 신이고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처형합니다. 
 
반면 신녀를 처형했다는 말을 들은 형은 매우 마음 아파하며 신녀가 들고 다니는 불씨를 찾아 다시 살려냅니다.
백성은 몸은 약하지만 자비로운 로물루스의 편에 서고 오직 힘에 굴복한 이들만 레무스의 편에 섭니다.  
 
형은 동생이 알바롱가 인들에게 생명이 위태롭게 되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생을 구합니다.
그러나 동생은 자신의 백성들을 마음대로 한다며 형에게 자신을 왕으로 섬기라며 덤비고 형은 쓰러진 척하다가 마지막에 동생을 찌릅니다.
이렇게 로마는 강력한 공포정치를 하려던 레무스가 아니라 신을 공경하던 형 로물루스에 의해 시작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뱀처럼 슬기로우면 사람들에게 비둘기처럼 당합니다.
반면 하느님 앞에서 비둘기가 되면 뱀과 같은 지혜를 주님께서 주십니다. 
 
사람은 비둘기와 같은 마음과 뱀과 같은 마음을 동시에 지닙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 앞에서 어떠한 성격이 드러나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25; 루카 10,21)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철부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지혜입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1코린 1,19) 
 
또 말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1코린 3,18-19) 
 
예수님의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라는 말에 집중합시다.
주님께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될 때라야 이 세상에서 진짜 뱀처럼 슬기롭게 됩니다.  
 
자신이 슬기롭다고 믿는 사람은 그 꾀에 자신이 넘어갑니다.
자신을 믿지 맙시다. 이것이 뱀의 지혜입니다.
하느님을 믿읍시다.
이것이 비둘기의 단순함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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