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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01 조회수 : 715

7월1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아모스 5,14-15.21-24
마태오 8,28-34 
 
좋은 것을 하는 것보다,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얼마 전에 청년들이 찾아와서 식사하며 연애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한 청년이 자신이 소개팅을 시켜주면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비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확실히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소개팅을 시켜줄 때, “어떤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느냐?”,
“연봉은 얼마나 되면 좋겠냐?” 등을 물어봅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이것만 아니면 된다.”라는 것 하나만 말해달라고 한답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보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는 키 작은 것은 용납 못 해.”라고 한다면, 대상 중에 키 작은 사람은 제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 만났을 때 비호감은 아니니까 말이 통하고 말을 하다 보면 정이 든다는 것입니다.  
 
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면을 갖춘 사람을 소개해주면 그 사람 안에서 싫은 면도 발견하게 되어 처음엔 좋았다가 금방 싫어져 헤어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어떤 면이 특별히 좋아서 만나기보다는 자신이 싫어하는 면이 특별히 없어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히 젊은 남자들은 예쁜 여자면 다 좋아하는데, 그래서 결혼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은 영 자신과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도 때는 늦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보다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느냐를 알아서 그것을 쳐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것 25개를 적어서 5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씁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주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주식들은 쳐내고 마지막 남는 것을 선택하여 투자합니다.  
 
그의 투자방식은 돈을 많이 버는 데 있지 않고 손해를 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좋은 것을 하는 것보다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보다, 내가 싫은 사람을 선택하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장점을 키우려고 노력하시기보다는 우리 단점을 제거하시려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십니다.
과일나무가 있다면 굵고 튼튼한 가지를 더 튼튼하게 자라도록 신경 쓰는 게 중요할까요,
아니면 쓸데없이 에너지만 축내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쳐내는 것이 더 중요할까요?  
 
쓸데없는 것들을 쳐내다 보면 자동으로 좋은 가지는 더 좋아집니다.
좋은 것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나쁜 것을 쳐내는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쳐내고 싶은 나쁜 가지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우상 숭배자가 되게 만드는 자아의 가지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다라인들의 가장 문제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귀 떼를 그들이 키우는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그것들을 물속에 바쳐 죽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 하나가 있다면 바로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어버려 당신을 그 우상을 섬기는 데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기며 하느님을 자신들 종으로 만들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큰 우상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가 우리를 우상 숭배자가 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이 가지치기하러 오시는 예수님이 싫다면
가다라인들처럼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청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가지들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주님께 바쳐야 했던 선악과와 같습니다.
결국, 그것을 바치게 하지 못하는 장본인은 우리 안에 있는 뱀입니다. 자아입니다.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입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쳐내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들의 배를 채우기를 바란다면 그것들을 쳐내려 오시는 예수님을 거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 가지치기만 할 수 있어도 내 안의 성인의 본성은 저절로 더 완전해집니다. 
 
내가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부터 가지 쳐 나가십시오.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거든 하기 싫은 것부터 가지 쳐 나가십시오.
문제는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가 좋은 곳에 집중되려면 그것을 허비시키게 만드는 것들부터 가지치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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