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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25 조회수 : 565

6월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신명기 30,1-5
에페소 4,29―5,2
마태오 18,19ㄴ-22 
 
‘스탠리 밀그램’은 상황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을 죽을 수도 있는 정도까지 전기충격을 가하게 하는 유명한 실험을 한 심리학자입니다.  
 
 
한 번은 어머니가 지하철에서 자신에게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는 푸념을 듣고는, 
무조건 도움을 청하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을 시켜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무조건 청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보다 두 배 정도나 높았습니다. 
이 요청을 받은 사람 중의 68%가 자리를 양보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실험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이 다시는 그런  실험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왜 그런 상처들을 받았는지 궁금해서 밀그램이 직접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청해보았습니다. 
물론 70% 정도가 자리를 양보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는 순간 기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실험에서 두 가지 배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나의 청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보다 낮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 쪽이 더 기분이 좋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받는 것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 것에 기인합니다.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길거리에서 적선을 받는 분들이 세상에서 가장 기분이 좋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대학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대리를 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오는 길에 두 명의 친구들을 내려주어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대리기사에게 돈을 좀 더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미안해서인지, 한 명은 가진 것이 만 원밖에 없다고 하며 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다른 친구는 오만 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거지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취급당하면서라도 그들이 기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이렇게 주고받음 속에서 형성되기에 상대가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더는 관계를 맺지 말자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사이 관계의 흐름이 끊깁니다. 
 
두 사람이 싸웠다면 어떻게 화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물론 상대가 좋아하는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고 기뻐할 수도 있겠지만, “누가 이런 거 필요하다고 그랬어?”라며 
도리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받는 것은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상대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무언가 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내와 싸웠다면 아내에게 꽃을 사 들고 오는 것도 좋겠지만, 당신이 해 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며 전화로 미리 부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화해를 위해 더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화해하려면 낮아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을 지독히도 미워하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 상대가 자신이 읽고 싶은 귀한 책을 한 권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그 책을 좀 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순순히 책을 빌려주었고 프랭클린은 잘 읽고는 너무 좋은 책이라는 감사와 함께 돌려주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참조: ‘어떻게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유튜브 책한민국] 
 
어쩌면 우리는 무작정 도와주는 것을 상대가 좋아하리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받고 싶은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라!’고 하시고, 바로 이어 ‘용서하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청해야만 하는 처지임을 알고 겸손할 수 있어야 용서도 가능한 것입니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을 목적으로 합니다. 
용서를 넘어서는 더 좋은 방법은 소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도 우리에게 무언가 해 줄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무작정 퍼주기만 한다고 관계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상하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되어야 하고 교류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 북한도 남한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화해하려면 우리가 무작정 주는 쪽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먼저 나를 위해 많은 도움을 줄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데 청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화해하려면 도움을 구하십시오. 
친구가 되려면 도움을 청하십시오. 
아니면 말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많은 친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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