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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12 조회수 : 663

6월12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1열왕기 19,9ㄱ.11-16
마태오 5,27-32 
 
욕구가 커지면 삶의 의욕이 줄어든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요즘 가톨릭 콘텐츠 등에서 성욕과 같은 인간의 욕망을 너무 누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심지어 성욕도 하나의 좋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면 오히려 많은 성과를 내게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성욕이 좋은 에너지이면 좋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 성욕을 계속 증가시켜야 할까요?
이런 모든 것들은 잘못된 세속적 학문에서 비롯된 생각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적인 욕구 자체가 이미 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율법인데 왜 세속적인 기준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꿔가며 성욕을 좋은 것처럼 포장할까요?
이는 자신들 안에 있는 성욕을 합당한 것으로 여기기 위해 그런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던 중 방학 때마다 한 본당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본당은 5백 년의 역사를 가진 그 동네 성당이었습니다.  
 
신자는 5천 명 정도가 되지만 주일미사는 3백여 명 나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성당에 오래되어 보수할 것이 많았지만 본당 신부는 돈이 없다며 한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는 수도회 성당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신자 대부분이 본당에 오지 않고 그 수도회 성당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본당의 천정은 갈라지고 있었지만, 수도회 성당의 천장은 금칠이 되어있었습니다.
멋진 성가대와 전례가 가난한 본당의 전례와 비교되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명실상부 가톨릭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주일미사 참례자는 10%도 안 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동네마다 본당과 수도회 성당들이 마치 경쟁을 하듯 산재하기 때문입니다.  
 
본당 주임 신부는 성당에 나오지 않으면 신자들이 수도회 성당에 가겠거니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도회 성당에서는 신자들의 교적이 없어서 그들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양들이 목자 없이 붕 떠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판공표를 나누어주어 신앙생활을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성욕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성욕은 우리 안에서 좋은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삶의 에너지를 빼앗는 적입니다.
한 목자가 신자들의 책임을 맡는 것이 좋습니다.  
 
수도자는 수도하는 목적으로 사는 것이 정상이지 본당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자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본당에서 수녀님들이 사제가 잘못한다고 신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수녀님은 과연 잘하는 것일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신자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교회의 에너지를 분산시켜 결국, 본당공동체는 와해하고 맙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서 마치 좋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꼭 필요한데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를 갉아먹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성욕이 강한 부부가 좋은 부부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처럼 동정으로 산 부부들은 안 좋은 부부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동정 부부로 산 이들이 더 서로를 위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다는 것을 알고 야한 비디오를 보려고 일부러 아프다고 하고 조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공부에 의욕을 불태울 때여야 합니다.  
 
성욕은 이렇듯 꼭 필요한 좋은 에너지를 빼앗습니다.
성욕이 강한 사춘기 아이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삶에 어떠한 건전한 의욕도 없습니다.
삶의 의욕은 육체의 욕망이 줄어들 때 생깁니다.  
 
성욕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그 성욕을 사라지게 만드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 욕구들을 불살라 에너지가 오직 사랑에만 쓰일 수 있게 하십니다.  
 
삶이 활력이 넘치게 하려면 성령으로 육체의 욕구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 성욕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되었다면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간의 생각으로 절대 변형시켜서는 안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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