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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11 조회수 : 553

6월11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나는 좋은 것만을 주는데 나쁜 것이 돌아온다고 느낄 때는? 

오늘은 바르나바 사도 축일입니다.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란 뜻을 지닙니다.
아마도 이름대로 이웃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박해와 순교였습니다.  
 
‘주는 것을 받는다.’라는 것은 하나의 흔들림 없는 세상의 법칙입니다.
내가 주는 대로 받는 것입니다. 내가 위로하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면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좋은 것을 주라고 파견받지만 박해와 모욕과 죽음을 받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좋은 것만을 주는데 내가 주지 않은 안 좋은 것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잘해 줘봐야 보람도 없다며 잘해주기를 멈춰야 할까요?
그러나 주는 것은 반드시 다시 받게 된다는 법칙을 믿어야만 합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는 많은 기적도 행했지만, 또한 위대한 설교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바닷가 마을은 안토니오 성인의 말을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성인의 설교를 들으려 모여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바다의 물고기들이 몰려와 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동물들을 통해 그의 설교를 듣게 하심으로써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위로하기 위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위로로 다시 갚아주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만약 100명이 들을법한 설교인데 1명만 듣는다면 99는 주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성 프란츠시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행복론은 더 특이합니다.
사람에게 위로를 받느니보다는 주님께 받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키면 그것이 참 행복일까?
아니다. 더 큰 행복이 있다.
내가 어느 집에 문을 두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청할 때 심한 모욕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행복이다.
그러면 나는 지치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려 주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 사람은 욕을 하며 오물을 뿌리고 나를 두들겨 팰 것이다.
이것이 행복이다.” 
 
성인들은 주는 대로 받는다는 이 법칙을 아셨습니다.
당신들이 이 세상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주님께서 그 대신 더 큰 열매로
갚아주신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는 남을 위로하고, 복음을 전하고, 사랑하는 데 지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합당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들을 나의 목에 칼을 댔다면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이웃이 어떠한 반응을 하던 내가 주는 것은 반드시 돌려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받으면 받아서 좋고, 거부당해도 나는 사랑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사랑이 거부되는 데서 오는 고통이 크다면 그만큼 더 큰 위안으로 주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독일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1부터 100까지 차례대로 합한 값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1+2+3+4+…+99+100’ 이렇게 하나하나 더해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다 더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놀라며 값을 물었습니다.
“5050입니다.” 
 
10살 때 이 문제를 푼 소년의 이름은 19세기 최고의 수학자가 될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였습니다.
가우스는 무조건 1부터 100까지 더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법칙’을 발견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러한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100=101, 2+99=101, … , 99+2=101, 100+1=101”
1부터 100까지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을 더하면 항상 101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1이 50개가 생기니 101×50=5050이 나옵니다. 
 
우리가 내어주는 것에도 이러한 법칙이 숨어있습니다.
결코, 내가 하는 수고는 합당한 보상을 받지 않고 끝나지 않습니다.
1밖에 받지 못했다면 사람들이 주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황금으로 도금된 100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 만들어놓으신 법칙입니다.
사랑합시다.
그러면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결코, 내가 하는 사랑보다 덜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랑이 거부당한다면 더욱 기뻐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 합당한 사랑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결과만 보고 결코 지쳐서는 안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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