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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07 조회수 : 520

탈출기 34,4ㄱㄷ-6.8-9
2코린토 13,11-13
요한 3,16-18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은 세트 상품이다 
 
 
개신교에서는 매우 유명한 ‘김동호’ 목사가 있습니다. 
작년에 폐암 판정을 받고 폐 일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술보다 더 힘든 것은 항암이었다고 합니다. 
항암 중 졸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옥의 고통을 느끼던 지난 한 해가 평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하늘을 두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항암의 고통 중에 침대에 쓰러져 밥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이사야 40장 1절의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내 백성을 위하라!”
처음엔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무슨 내 백성을 위하라고 하시나?’라고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암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그 고통만큼 당신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너도 아파 봤으니까 알잖아. 내 사랑을 전하라!” 
 
침대에 실려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 6시마다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란 이름으로 항암의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벌써 300회가 넘었고 1년에 벌써 구독자가 12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고통스러운 가운데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말기 암 환자분의 자녀가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고 합니다. 
 
“그 지옥같이 고통스러운 나날을 천국 같이 지내다 가셨습니다.” 
 
[출처: ‘김현정의 뉴스쇼’, 김동호 목사, ‘지옥 같은 항암, 천국처럼 행복했다’]
번지점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위험한 외줄 타기나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위험한 스포츠를 즐길까요?  
 
그 이유는 죽음 가장 가까이에 있을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안전한 곳에서는 살아있음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는 삶과 죽음이 세트 상품이기에 그렇습니다. 
삶과 죽음은 한 세트이기 때문에 하나가 커지면 다른 것도 커집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재미없는 관계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관계입니다. 
그 안에서는 친밀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행복은 친밀한 관계에서 옵니다. 
그런데 관계가 친밀하려면 그만큼 멀어지는 고통도 감수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발에 줄 하나 매달고 뛰어내릴 용기를 내지 못하면 살아있다는 쾌감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관계도 하나의 모험입니다. 
내 전부를 내어줄 용기가 없다면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행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관계가 ‘믿음’에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선물’에 의해 생깁니다. 
모르던 두 사람이 사귀면 상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선물을 합니다. 
선물 안에 그 사람의 사랑이 담깁니다.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쑤시개를 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과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선물 안에는 그 사람의 존재가 담깁니다. 
선물 안에 그 사람의 생명이 담길 때, 그리고 상대가 그 선물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친밀한 관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의 선물이 부담스러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과도 같은 선물이 쓸모없게 됩니다.  
 
이때 선물을 주는 사람이 받는 상처는 그 선물을 위해 얼마나 투자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그 선물이 생명과도 같다면 그 사람은 거부당할 때 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관계를 위해 조금만 투자합니다. 상처받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라면 상처는 받지 않을지언정 삼위일체 관계가 이루어져 느끼는 
천상의 행복은 맛볼 수 없습니다. 
천국의 행복을 맛보려면 지옥의 고통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관계 안에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지옥까지도 내려가십니다. 
구원 역사 안에서의 이런 관계는 삼위일체 관계의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차거나 뜨거우면 삼키겠지만 미지근하면 뱉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딱 그 정도만 선물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적당히 신앙생활 하며 만약 하느님이 안 계시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는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행복은 그리스도와의 삼위일체 관계를 통해 느끼는 행복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당신 살과 피를 선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는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성령 선물의 보답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부활과 승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십니다. 
이렇게 되실 수 있으셨던 이유는 관계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줄 아는 용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행복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투자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옵니다. 
아니 관계의 친밀도에서 옵니다. 관계의 친밀도는 내어줌의 정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조금 내어주는 관계는 조금 깊은 관계이고 많이 내어주는 관계는 아주 깊은 관계입니다.  
 
평생 친구 같은 친구 하나 없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친밀한 관계를 맺어갈 것인지는 내가 관계를 위해 지옥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당신 십자가의 내어주심을 통해 우리도 삼위일체 관계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관계를 통한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은 세트 상품입니다. 
사랑을 위해 지옥을 감수할 용기가 있다면 삼위일체 행복을 이 세상에서부터 체험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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