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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06 조회수 : 614

히틀러 정권에 항거하다가 8년 동안 옥고를 치른 마틴 니뭴러(Martin Niemoller)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가 옥고를 치른 후 위대한 「2차 대전 책임백서」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그 책 가운데 이런 체험이 나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어느 날, 니뭴러 목사가 일곱 번이나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 줄로 서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는데 심판대 앞에 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니뭴러 목사도 그 대열에 서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이상하게 죄를 고백하지도 않고 회개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면서 자꾸 변명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나를 반대하고 욕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내게 사랑으로 예수님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평생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다고 믿고 있었던 니뭴러 목사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틀러가 이렇게 된 것이 바로 네 책임이다.”

이 말을 들은 니뭴러 목사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네가 8년 동안 히틀러 정권에 대해 항거만 했지 한 번이나 그에게 복음을 전했느냐?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죗값이 너에게도 있는 것이다.”

이 똑같은 꿈을 일곱 번이나 꾸고 “이 전쟁의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었구나!”라고 가슴을 치면서 회개의 눈물로 쓴 책이 「2차 대전 책임백서」라고 합니다.

      신앙인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율법 학자’와 ‘율법주의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보기에는 율법주의자일뿐인 이들이 율법 학자라고 내세우며 다니는 것에 질책하십니다. 우리는 율법 학자가 되어야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차이는 바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생각으로 결정됩니다.

      저 먼 나라의 한 어린이가 먹을 것이 없어 굶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그 책임이 나에게 없다고 말하면 그 사람 안에는 ‘율법’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 지웁니다. 그래서 율법 학자는 자연과 세상이 이렇게 되어 가는 것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믿지만, 율법주의자는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예수님 당시의 율법 학자들은 겉모양으로는 모든 율법을 다 알고 지킨다고 사람들이 여기게끔 꾸미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이웃의 가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 곁에는 천 원밖에 없는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는 천원까지 헌금통에 집어넣었습니다. 주님께만 희망을 거는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보살펴주시지 않으면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율법은 그런 사람을 자신의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책임감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그런 책임을 무시하면서 완전한 율법주의자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 학자가 아니라 실제적인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린 이유는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율법까지도 이용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낳은 아들이 카인입니다. 그는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이 동생을 지키는 사람이냐고 그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 말 안에는 자신 안엔 율법이 없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율법은 책임입니다. 이웃에 대한 나의 책임을 깨우쳐주는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일본 소프트 뱅크의 손정희씨가 중병에 걸려 오래 못 산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는 아프리카의 한 이름 모를 소녀를 생각했습니다. 그녀에게 꽃 한 송이, 사과 하나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처럼 미소짓게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 율법이 비로소 그의 마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생명이요 건강이신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건강이 회복된 것입니다. 율법은 세상 가장 먼 나라의 한 아이까지도 나의 책임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책임이 일지 않으면 나는 구원되는 율법 학자가 아니라 구원 못 받는 율법주의자로 머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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