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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05 조회수 : 605

6월5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2티모테오 3,10-17
마르코 12,35-37 
 
기득권과 민중이 대립한다면 진리는 어느 편일까? 

제가 일반 대학교 입학하여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데모’였습니다.
저는 그런 정치적인 것에 끼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멋모르고 들어갔던 가톨릭학생회 동아리가 알고 보니 데모 주도 모임이었습니다.
데모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아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화염병 정도는 날라주어야 했습니다.  
 
백골단에 끌려갔던 선배가 눈이 함몰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며 다른 이들은 분노했지만,
저는 저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뒤로 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시청 앞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어떤 모르는 여학생이 손바닥에 무언가 써 주었습니다.
손가락으로 무언가 쓰는데 저는 예쁜 여학생이 손을 잡고 써 주니까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뭐라고 쓰는 거냐고 물으니 그 여학생은 짜증을 내며 “집회가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군데군데 사복경찰들이 섞여 있어서 시청 앞에서 데모한다고 했다가 그곳으로 병력이 집중하니까
급하게 명동성당으로 장소를 바꾼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각자 명동성당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저는 그 혼란을 틈타 집에 와 버렸습니다.  
 
물론 동아리 선배들은 명동성당에 갇혀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TV로 보는데 그 많은 병력이 명동성당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이유로 데모를 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강경대라고 하는 한 학생이 경찰이 휘두른 봉에 맞아 죽은 이유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명의 학생이 죽었습니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명동성당이 공권력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것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단호함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987년 6월 명동성당 공권력 행사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녀들 위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라고 하시며 공권력에 맞서 학생들을 옹호하였습니다.
이후로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때도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철옹성이었습니다. 
 
만약 기득권과 민중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누가 옳은지 분별해서 선택해야 할까요?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은 누가 옳고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무조건 약자이자 권력을 갖지 못한 민중들 편에 서셨습니다. 
 
김 추기경이 동성학교에 다닐 때, 시험에 황국 신민으로서의 소감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학생 김수환은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어서 소감이 없다.”라고 써서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를 맞았었다고 합니다.
장면 박사가 아니었으면 퇴학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법을 지키라며 평화시장 앞에서 분신한 전태일의 영화가 나오자 가장 먼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계셨습니다. 
 
왜 항상 기득권들보다 가난한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 옳을까요?
그 이유는 기득권들은 이미 생각이 세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진리까지 왜곡합니다.  
 
‘진리’를 왜곡시켜서라도 세속적으로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이는 지금이나 예수님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요 며칠 동안 예수님은 당시 기득권인 사제들, 부자들인 바리사이들, 지식층인 율법학자들,
정치인들인 사두가이들에게 공격을 당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싸잡아서 공격하십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여겼습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면 누가 좋을까요? 기득권이 좋습니다.
로마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자신들이 지닌 것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사람들이라면 메시아는 자신들의 배고픔만을 충족시켜주고 천국을 약속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기득권은 그런 메시아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다윗도 메시아를 두고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겠냐고 했을 때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라고 말합니다.  
 
분명 기득권들은 싫어할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어 독립운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이익을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왕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기득권과 민중이 다투고 있다면 민중 편에 서는 것이 맞습니다.
기득권은 세속적인 것은 원하지만 가난한 민중은 구원을 원합니다.  
 
‘민중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말이 있듯이, 진리는 가난한 군중 속에 머뭅니다.
가정에서도, 본당에서도, 나라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음을 잊지 말고 항상 가진 것이 없는 다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진리를 잘 분별하며 살아왔다고 하실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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