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
티모테오 2서 1,1-3.6-12
마르코 12,18-27
사후세계는 현세에서 내가 선택한 행복의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굿플레이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자기밖에 모르던 한 여인이 갑자기 죽어서 눈을 떴는데 천국에 가게 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천국에서는 각자에게 맞는 사람들과 이웃으로 살 수 있게 해 주고 취향에 맞는 집과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공 엘리너는 우크라이나에서 봉사하던 변호사가 아니라 가짜 약을 노인들에게 사기 쳐서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자신이 천국에 오게 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그러나 사기꾼이 선한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평생 사기만 치던 이 여인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엘리너는 평소처럼 예쁜 여인을 기린 같다고 무시하고 파티장에 있던 새우를 훔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기린들이 길거리에 뛰어다니고 새우들이 날아다니는 등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것은 엘리너가 남을 흉보고 음식을 훔쳤기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엘리너는 착해져 보기 위해 쓰레기 청소 봉사를 맡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놀고 싶어서 쓰레기들을 구석에 감춰놓고 놀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쓰레기 비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기적인 행동이 모든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는 설정입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재자가 탄생하면 그 사람이 자기 가족만을 위해 재산을 모을 때
다른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드라마는 엘리너가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 착해지는 과정을 엮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상에서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오면 그 사람 때문에 천국이 지옥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잘못된 행복의 기준을 가진 이들이 살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이 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선택한 행복의 기준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천국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며 윤리적인 문제보다는 현재를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에 지배받으면 그리스에, 로마에 지배받으면 로마인들에게 복종하며 현세에서 잘 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인들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이들에겐 큰일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나뉘어 있다고 말하는 예수님께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걸고넘어지려 하는 것은 결혼 문제입니다.
모세의 법이 형이 자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와 다 함께 살았던 한 여인이 죽으면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은 분명 행복한 곳이니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의 모든 관계가 의미 없어진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천국에서 성모님은 여전히 예수님의 어머니이실 것입니다.
다만 새롭게 결혼의 문제가 거론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의 유일한 행복은 하느님의 존재가 될 것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그 행복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들이 지극히 현실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결혼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고 천국의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예수님에게는 그들이 그런 행복관으로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행복관으로 천국에 들어오면 남의 여자를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이 행복해지려 할 것이기 때문에 다시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행복의 기준이 성령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는 시간이 ‘기도’이니,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 기도가 되지 않으면
아직 천국에 들어올 행복의 기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두가이와 같은 현세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행복의 기준을 성령으로 둘 줄 알아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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