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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17 조회수 : 604
5월17일 [부활 제6주일] 
 
사도행전 8,5-8.14-17
베드로 1서 3,15-18
요한 14,15-21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전쟁 
 
 
평화방송 ‘TV 피정’ 중 양승국 신부의 강의 내용에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회개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처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종교적으로도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져 있었고 삶은 매우 문란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386년 8월 밀라노 한 정원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집어 들고 읽어라!” 
 
눈을 떠 보니 앞에 성경책이 놓여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펼쳐서 읽은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자신에게 하시는 그 말씀을 읽고는 큰 회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의 가슴은 확신의 빛으로 가득 찼고 의심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즉시 그는 암브로시오 주교를 찾아가서 세례를 받고 은둔 속에서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회개가 그것으로 완전히 종결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분의 회개는 한 평생에 걸쳐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한 순간에 된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그러나 우리 일생은 유혹과 싸워 승리하는 것만 배운다면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될 만큼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귀에 속삭였다고 합니다.
“친구야, 네가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네가 우리 없이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프란치스코 성인도 유혹이 들 때마다 장미 밭에서 맨살로 뒹굴러 온 몸에 피가 흐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자신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그런 유혹이 올수록 더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땅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아와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며, 세상 것을 욕망하는 것을 멈추고 주님을 욕망하는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잊고 그분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 노력이 커질수록 악마의 속삭임은 줄어들었고 결국엔 이런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우구스티노야, 두려워말고 모든 근심 걱정을 하느님께 맡겨라.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겨라.
미래는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맡겨라. 현재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 기뻐하라.”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과 싸우고 천사의 위로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죄와의 싸움은 결국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쉼 없는 전쟁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히브 12,4)
우리도 가끔은 죄에 떨어져 매번 같은 것으로 고해성사 해야 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한탄하며
‘매번 그렇게 고해성사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같은 죄로 죽을 때까지 계속 고해성사를 하면 구원받게 됩니다.
적어도 지옥에 가게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죄와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죄인지, 누가 적인지 명확히 깨닫게 만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내린 은총의 선물을 통해 그는 무엇이 악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은총이 내리지 않으면
자신이 돼지 쥐엄나무 열매를 서로 빼앗아먹으려고 하는 죄의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삶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예 그 죄의 삶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믿어버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겐 죄와의 싸움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싸움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돼지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 아들은 그것이 비참한 삶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이미 멀리서 아버지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죄 속에 파묻혀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빛이 들어올 때에야 내가 온통 어둠임을 깨달을 수 있듯이, 은총이 들어오기 전에는 무엇이 적인지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탕자가 머리를 들어 아버지 계신 곳을 바라보게 된 것 자체가 커다란 은총의 작용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를 듭니다.
예수님께서 착한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될 것인데 그것을 ‘회개’라고 정의하십니다.  
 
회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노력으로 흐르는 은총의 선물이 내 안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돌아온 탕자가 스스로 돌아온 것 같지만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파견하여 그 피의 노력으로 탕자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께로 인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을 통하여 죄와 싸우게 만드는 것일까요?
세례 때 성령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사탄과 싸우신 그리스도는 바로 그 이후에 하느님의 뜻을 완수할 소명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1-2ㄱ) 
 
우리 또한 세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그러면 무엇이 죄인지를 명확히 깨닫게 되어 이제 친구였던 것들이 적들이 되게 됩니다.  
 
성령은 빛으로서 어둠에 갇혀있던 우리 안에서 자아와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지금 그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그 안에서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도 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돌아가시기 직전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이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마지막으로 당신 양떼를 독려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에 만나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삼구(三仇)에 맞서서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대들의 영혼을 위한 큰 일을 경험하십시오.  
 
이런 박해 때에는 주님의 시험을 보게 됩니다.
세속과 마귀를 물리쳐서 덕행과 공로를 크게 세울 때입니다.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고 영혼을 구하는 일(事主救靈事)에서
뒷걸음질 치지 마십시오.” 
 
이렇듯 삼구(세속, 육신, 마귀)가 세례 받은 신자가 싸움을 벌여야 하는 원수요 적임을
예전에는 명확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는 무기가 복음삼덕(가난, 정결, 순명)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 신자의 원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비자 교리에서도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은총으로 새로 태어날 사람을 교육하는데 적이 누구인지 가르쳐주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는 어쩌면 성령의 힘이 교회 안에서 약해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삼구(三仇)는 뱀(자아)이 자아내는 세 가지 욕망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다면 아담은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란 마치 돼지처럼 쥐엄나무 열매나 먹으며 행복이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은총을 전달하는 중개자가 되어 그들 또한 땅에서 하늘로 시선을 올리고 아버지께로 향할 수 있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이를 보다 논리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즉, 처음에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면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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