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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15 조회수 : 675
사도행전 15,22-31
요한 15,12-17 
 
십자가의 가난과 포용력의 관계 
 
 
오늘 아침식사를 신부님 한분과 함께 하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어떤 원로신부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엔 그 분의 결단력과 성품에 대해 좋은 평을 서로 늘어놓았습니다.
그 분은 정말 가난하게 사시고 교회 정신에 맞게 성인처럼 사시는 분입니다.
개인적인 삶으로는 누구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포용력의 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실패한 경험도 없고 당신이 완벽하셔서 다른 사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수긍이 가는 말이다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모습이 저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삶이 모범이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살도록 권유하고 또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안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 왔습니다.  
 
이는 아마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을 만들어서 나를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갖기를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같은 사제들을 보면서 많이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엔 제가 생각하기에 좋지 않은 모습들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사제가 목자로서 신자들을 잘 이끌면 되지.’라고 생각하여 사제들보다는 신자들에게 먼저 신경을 쓰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제들보다 신자들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제 자신을 돌아보니 저도 혼자서는 잘 살지만 함께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형제적인 모습을 이루는 것에는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은 모두가 성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사람들도 있었고 좀 더 완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유다와 같은 배신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단을 성인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로 구성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모여 당신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모범을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포용하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유다는 그런 면에서는 다른 사도들의 스승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거짓말쟁이이며 도둑이고 배신자인 유다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가 배신자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모두가 유다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그렇게 참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성장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종이 아닌 친구로 부르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흠이 많은 인간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모범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벗을 위해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은 자신을 온전히 비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남에게 주어서 자신을 비웠기에 누구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무한한 포용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나로 가득 찰수록 사랑이 줄어들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있으면 부딪혀서 감정이 상하느니 그냥 외면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누구 하나 놓치지 말고 품어줄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 넓은 마음은 또한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랑의 마음에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부족하면 상대방을 감싸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버린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해봅시다.
당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끼지 않고 주실 수 있었던 사랑, 그렇게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랑을 가져야만 우리도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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