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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13 조회수 : 616

5월13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15,1-6
요한 15,1-8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성경 해석의 울타리를 정하는 주체는 교회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군 병사 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시체를 전쟁터에 그냥 방치해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식 장례를 치러 주기로 했는데, 전투가 벌어지는 일선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흰 울타리를 친 작은 공동묘지가 딸린 성당이 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친구의 시체를 공동묘지로 옮겨가기 위해 상사의 허락을 받은 병사들은 해가 지기 전 겨우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허리가 굽고 야윈 신부가 그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깊은 주름이 팬 햇볕에 그을린 신부의 얼굴은
지혜와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번쩍이는 두 눈이 자리 잡고 있는 집처럼 보였습니다.
 
한 병사가 정중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친구가 전쟁터에서 숨졌습니다. 우리는 그를 교회 묘지 에 묻어주고 싶습니다.”
 
신부는 병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지만 아주 서투른 영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이곳에 묻어 줄 수가 없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서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은 채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노 신부가 그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울타리 밖에 묻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병사들은 하얀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어 주었습니다.
그 일을 다 마쳤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지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선을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그 작은 성당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묻은 자리를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지치고 어리둥절해진 병사들은 성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묻은 자리를 알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어젯밤 지치기도 했고 어두워서 그랬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 말에 노 신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젯밤 댁들이 떠난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울타리를 옮겨 놓았습니다.”
 
성체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같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일까요?
아닙니다.
오직 성변화가 일어남을 믿는 가톨릭 신자들만이 밀떡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성사의 특징입니다.
 
성사(聖事)는 거룩하게 된 것이지만 거룩하신 분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성사도 거룩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성경도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문자들로 된 책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인들은 물론이요, 여호와의 증인,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의 특징은 성경을 먼저 들이밀고 그것이 진리인 양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도 성사이기 때문에 각 종교의 믿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가 다르게 보이는 기준 가지고 무슨 논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자기 주장만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성체를 가지고 논쟁을 해봐야 그 안의 본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론이 날 수 없고 각자의 주장만 남을 뿐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처음 발생했던 논쟁은 바로 ‘할례’에 관한 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할례에 대해 논쟁하면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성경을 먼저 피고 연구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독서는 교회가 소집되었다고 나옵니다.
 
위의 예화에서 병사들이 동료의 시신을 교회 안에 묻기 위해 성경을 펴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당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영역을 내어줄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가 다르게 해석하는 성경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종교의 주체의 재량에 맡겨진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인 할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성경을 펴 놓고 자신들끼리 논쟁하기보다는 교회에 건의를 하고 교회의 구성원들이 소집되어 그 결정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가차 없이 울타리를 넓혀서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할례규정을 폐지해 버렸습니다.
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도
성령을 충만히 받은 교회에 달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을 통해 세워진 교회의 뿌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교회는 가톨릭교회 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쓰셨다면 성령께서 가장 완전한 해석을 해 주실 수 있는데, 그 성령께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활동하게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성체처럼 그 믿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의 판단 규범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성경을 펴 놓고 자신들의 교리에 끼워 맞추는 설명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를 가져다놓고 코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든 사람뿐이고 그것을 만든 사람은 교회 안에 계십니다.
 
교회가 모여 정하면 그것이 곧 해석의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먼저 믿으면 밀떡 모양이지만 성체로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체성사가 이루어짐을 먼저 믿어야 성체를 통한 구원에 이릅니다.
물론 이것도 예수님은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 데도 다른 그리스도교에서는 믿지 않습니다.
 
각자의 해석의 울타리가 있는 것이지 성경 자체를 연구해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먼저 울타리를 칠 수 있는 교회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 울타리 안에서 성경이 오류 없이 완벽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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