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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10 조회수 : 627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사도행전 6,1-7
베드로 1서 2,4-9
요한 14,1-12 
 
​당신의 감정은 100% 당신 책임이다 
 
어떤 분들은 상담이나 고해성사를 하며 제가 그분들 감정에 맞장구쳐주기를 바라십니다.
“신부님은 이런 상황에서 화 안 나시겠어요?”라고 말하는 듯하고, 또 어떤 경우는 “신부님은 이런 상황이라면 주일미사에 나올 수 있었겠어요?”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화 안 날 텐데요?”,
“저는 그래도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요?”라고 말하면 그분과의 관계는 끝입니다.
아주 냉담할 수 있어서 그렇게는 말하지 못하고 잘 감싸주며 말해줍니다.  
 
그러나 오늘은 복음 말씀이 그런 것이기에 일대일로 말할 때는 할 수 없었던 말을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당신이 그런 건 100% 당신 책임입니다.” 
 
물론 100%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 1%라도 남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상황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
점차 그 핑계가 늘어나서 자신이 변화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과 감정에 대한 책임을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낄 때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가 보이게 됩니다. 
 
17살에 최연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소녀가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말라라 유사프자이라는 소녀입니다.
그녀는 어린 소녀들의 교육을 받아야 할 권리를 주장하다 15살 때 파키스탄 탈레반 무리가 쏜 총이 머리에 맞았습니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16살 생일에 유엔에서 연설하였습니다.
어떠한 상황도 그녀의 소녀들에 대한 교육권에 관한 주장을 중단할 핑계를 주지 못했습니다. 
 
베서니 해밀턴은 서핑 선수였습니다.
13살에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서핑 보드에 잠시 누워있다가 상어에게
어깨 밑으로 팔 한쪽을 잃었습니다.
당시 몸에서 60%의 피가 빠져나가 저혈량 쇼크로 죽음에 직면했지만,
그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1달 뒤 다시 바다에 나가 서핑 보드를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우승행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짐바브웨의 촌구석에 테레라이 트렌트라는 이름의 11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가 소 1마리 가격으로 툭하면 손찌검해대는 남자와 혼인시켰습니다.  
 
테레라이는 박사학위를 받아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0살도 되기 전에 4명의 아이를 낳고 끊임없는 남편의 손찌검에 피해를 보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돈을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결국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 합격했고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아이들을 먹여가면서도 공부를 끝까지 마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물론 계속 꿈을 방해하며 손찌검하는 남편과는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그녀는 시골 지역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테레라이트렌트인터네셔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은 것이 다를 뿐입니다. 
 
내가 감정이 격해져 화를 냈다면, 나는 내가 감정이 나빠진 것을 남의 탓을 하는 중입니다.
화가 난다면 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화가 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이 본래 그런 무감각한 사람이라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그만큼 노력한 것입니다.  
 
감정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인데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오늘 복음 말씀을 인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시키실 분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당신 안에 살게 하심으로써 아버지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죽음이라는 극도의 고통 앞에서도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며 성령을 청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는 매 순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음을 믿지 못하면 계속 핑계만 대다 한 번도 행복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다 나의 탓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든 성령께서 나에게 행복한 감정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원하면 행복한 감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신 이유는 이 성령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입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매 순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기적은 없습니다.
당장 핑계를 집어치우고 지금, 이 순간부터 결코 행복을 잃지 않으려고 결심해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서 운전병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군용트럭으로 자동차를 박아 폐차시켰습니다.
다행히 운전자는 많이 다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빌려 합의금을 싸 들고 오셔야 했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기 싫었습니다.
이것을 들은 상관은 “그런 거 가지고 운전 못 하면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 못 하면 영원히 못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운전하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얼마 뒤 제대하고 어떤 사람이 제가 모는 차를 받아서 그때 합의금으로 쓴 돈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운전을 포기했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감정을 남의 책임이나 상황의 핑계로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당장 다시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시려고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읍시다.
그러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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