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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5-02 조회수 : 564

5월2일 [부활 제3주간 토요일] 
 
사도행전 9,31-42
요한 6,60ㄴ-69 
 
​영적인 길과 육적인 길은 반대 방향이다 
 
 
우리는 14세기 교황이 약 70여 년 동안 프랑스 아비뇽에 죄수처럼 갇혀 살았던 ‘아비뇽 유배’를 기억합니다. 이 발단은 ‘돈’이었습니다.
영적인 종교에 육적인 욕구가 개입된 것입니다.  
 
프랑스 필립 4세는 교황청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싫어하였고 결국 힘을 이용해 교황을 로마가 아닌 아비뇽에 머물게 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십자군 전쟁을 하며 지나치게 돈을 많이 쓴 영향도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돌아갈 가정이 없어져 그들이 약탈해온 재물로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성전 기사단’입니다.  
 
필립 4세는 ‘성전 기사단’이 소유한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필립 4세는 교황을 잡아놓고 성전 기사단을 해체해 재산을 몰수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그가 교회를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적인 것을 찾았기에 영적인 소리를 하는 이의 입을 막은 것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교회를 믿었는지는 주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덕분으로 교회는 이후 로마파와 프랑스파, 그리고 공의회 파가 정한 3명의 교황이 생기는 분열과 혼란까지 겪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대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전에 한국 교회 주교단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 교회를 비판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주교들보고 옷을 벗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집회가 끝나고 나면 주일미사를 하고 경건하게 성체를 영하고 해산하였습니다. 
 
이렇게 지금도 종교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말하면 거북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에 머무신다면 주교단이 결정한 것은 영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교회에 머무는 것은 어쩌면 가리옷 유다와 같을 수 있습니다.
유다는 머물기는 하되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교회에 스며든 세속적 사상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영과 육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입니다.
5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유다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영 거북해서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을 듣고는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떠나갑니다. 
 
왜 거북할까요? 자신들이 원하는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갤럭시 스마트폰만 쓰는데, 아이폰이 좋다고 말한다면 그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말이 듣기에 거북한 이유는 그것이 진리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세상의 영화였습니다.
그들의 뜻과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열두 사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던 것일까요?
누구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때나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지만, 그것도 십자가의 신비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께 머물렀습니다.
그분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해도 예수님 말씀이 거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고, 영이며 생명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예수님께 머물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십니다.
결코, 육을 추구하는 방향과 영을 추구하는 방향이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빛과 어둠은 반대지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는 저를 ‘극단적 이원론자’로 비평합니다.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 영과 육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요한복음의 핵심이요 가톨릭교회 교리의 핵심입니다.  
 
일원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하느님은 태양과 비를 선인과 악인에게 골고루 내려주신다고 말하며 하느님은 이렇게 자비하시므로 결국 지옥도 없을 것이고 어둠도 빛에 속하게 될 것이며 육체도 영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영과 육에 섞이게 만들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많이 잘못된 신앙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의 교회에 육이 섞이면 교회까지도 자신의 육에 속하게 만들어 이용하게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속하려면 영을 선택할 것인지 육을 선택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두 반대되는 길을 갈 수 없고, 두 의자에 동시에 앉을 수 없습니다.
돈도 좋고 예수님도 좋을 수 없습니다.
세상도 좋고 하느님 나라도 좋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요한 8,21)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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