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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24 조회수 : 564

사도행전 5,34-42
요한 6,1-15 
 
​모든 기적은 “될까요?”로부터 시작된다 
 
 
두 팔 없이 태어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이름은 ‘제시카 콕스’(Jessica Cox), 올해 나이 35세입니다.  
 
그녀는 두 다리만으로 할 수 있는 가능한 것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팔을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세수나 화장도 손수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두 발만으로 콘택트렌즈까지 착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자는 1분에 25단어 정도가 가능하며, 그 작은 핸드폰 자판으로도 문자 메시지를 큰 불편 없이 친구들과 주고받습니다.
14살에 태권도 공인 2단을 땄고 수영도 합니다.  
 
바다에서 서핑도 하며 물론 운전도 합니다.
그녀는 장애인 면허가 아니라 일반 운전면허를 취득하였습니다.
자동차만이 아니라 비행기 조종도 합니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이미 단독으로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한다’라고 말하곤 했죠!” 
 
“무조건 한다.”라는 믿음은 사실 “할 수 있을까?”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다보니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두 발로 두 손이 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두 손이 있는 사람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면을 무시하면 결국엔 자신의 믿음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기적을 일으키실 작정을 하시고 마음을 떠보기 위해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필립보는 말도 안 된다고 혀를 찹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다르게 안드레아가 대답합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둘 다 믿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둘의 자세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마치 마중물이 들어간 상태와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필립보는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확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의문형으로 말합니다.
의문은 이미 가능성을 1%라도 전제하고 있으므로 나오는 말의 형태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봉사하라고 하면 “저는 능력이 없어서요.”라고 잘라버리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제가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하기 싫다는 의미로 들리고 그래서 시켜도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을 시키면 무슨 일을 시켜도 잘합니다. 
 
빵 다섯 개는 우리 자신의 인간적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숫자 ‘5’는 다섯 개의 감각, 즉 ‘오감’(五感)을 나타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능력을 말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에서 숫자 ‘2’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진리입니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 이미 그 사람 안에서 성자와 성령께서 힘을 쓰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부정적으로 확정하지 않고 의문 하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이미 믿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미시간 그랜드 래피드 근처에 1904년도에 개발한 석고 광산이 있었습니다.
1943년까지만 해도 수백만 달러가 나가는 광산이었으나 결국 쓸모가 없어져 폐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이 폐광의 지하터널 온도가 연중 균일하게 10도 시 정도가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칠면조, 계란, 감자 등을 저장하는 창고로 변형시켜 큰돈을 벌었습니다.  
 
모든 기적은 “혹시?”라는 작은 1%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한 걸음이 없으면 두 걸음도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이 전에게 유튜브를 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저는 시간도 없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난 못해!”라고 말하지 않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만 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해버리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정에 나를 가두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때문에 시간이 생겨서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에게 주님께서 양식을 주시는 재료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사제가 된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적어도 의문은 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불가능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 부정적 확정문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작은 의문이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항상 주님의 뜻에 나의 마음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통한 주님의 계획을 잘 모릅니다.
주님의 어떤 뜻이 들어온다면 부정적 정언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끊어버리지 말고 적어도 “될까요?”라는 의문으로라도 마음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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