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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23 조회수 : 598

사도행전 5,27-33
요한 3,31-36 
 
내가 편한 곳이 내가 살 곳이다 

1979년 미국 오하이오주, 지역 일관지에 뜻밖의 광고가 실립니다.
노인들에게 7일간의 무료 여행을 보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에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뉴햄프셔주의 오래된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규칙을 듣게 됐습니다.  
 
먼저 청소나 빨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1979년이 아닌 20년 전인 1959년처럼 지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원의 모든 환경은 1959년처럼 꾸며져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20년 전에 살았던 것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이후 일주일간의 체험이 끝나자 노인들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훨씬 젊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던 노인들이 혼자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등 건강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실험 이후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젊어진 것처럼 신체적 나이 역시 50세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하버드대학교 엘렌 랭어 교수가 계획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라는 실험이었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몸의 변화를 끌어낸 것일까요?  
 
환경의 변화가 먼저 믿음의 변화를 끌어낸 것입니다.
70대 노인들이 나이를 잊고 50대라는 착각에서 오는 믿음을 갖게 만든 것입니다.  
 
믿음은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믿는 대로 자신을 변화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자신이 사는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생긴 정체성이 곧 자신이 사는 세상과 직결됩니다.
정체성과 맞는 세상에 살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2003년 미국 유타주 블루 존 캐니언으로 가벼운 하이킹 등반을 떠났던 자신만만한 청년 애론 랄스턴은 그만 호박돌을 잘못 짚었다가 돌과 함께 떨어져 절벽 사이에 손이 끼이게 됩니다.  
 
그는 음식과 물 없이 5일을 버팁니다.
가진 칼로 자신 팔을 짓누르고 있는 돌을 긁어보지만, 칼만 무뎌질 뿐 손은 빠지지 않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돌아가야만 하지만
남은 방법은 자신의 손을 그 뭉툭하게 된 작은 칼로 잘라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뼈 때문에 팔목이 잘리지 않을 것이기에 먼저 자신의 팔꿈치를 거꾸로 꺾어서
부러뜨려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기절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거기서 멈추어야 할까요?  
 
그는 먼저 팔을 부러뜨립니다.
칼로 살과 힘줄을 자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만세! 내 팔을 잘랐다. 이젠 살았어!” 
 
실화를 다룬 영화 ‘127시간’의 내용입니다.
애론은 블루 존 캐니언의 협곡에 있었지만 실제로 그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어머니와 친구들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5일 내내 자신이 속해있던 세상을 상상하며 그 자리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속해있게 만드는 팔을 잘라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피로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할 인간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늘에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십니다.
이것을 믿으면 자신이 속한 세상이 바뀝니다.
돈이나 명예, 쾌락이 있던 이런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 고통으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면 자아라는 팔을 자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로 태어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계속 ‘새로 남’에 관한 말씀입니다.
새로 태어남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믿음으로 성취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리스도의 피로, 즉 물과 성령으로 생깁니다.
그러면 자신이 속해야 하는 세상이 바뀌고 이를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르는 노력이 시작됩니다. 
 
이제 미사가 재개되려고 합니다. 우리는 미사가 그동안 얼마나 그리웠습니까?
‘왕이 된 남자’란 영화에서 왕과 똑 닮은 거지가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처음엔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신도 왕일 수 있다는 생각이 일자 오히려 그 자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진짜 왕처럼 행동합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바뀌면 그 정체성이 합당한 공간에 머무는 것이 편한 법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하느님 백성이 됩니다.  
 
내가 편한 곳은 세상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이 계신 하늘입니까?
집입니까, 성당입니까?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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