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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21 조회수 : 716

4월21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사도행전 4,32-37
요한 3,7ㄱ.8-15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리는 성령의 바람은 십자가다 
 
1500년대 프랑스 카푸친 수도회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암브로시오란 수사 신부가 있었습니다.
어깨에 손바닥과 같은 특이한 점을 가진 채 수도원 앞에 버려져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만 산 수도사입니다.  
 
그러나 그의 엄격함은 같은 수사들에게도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는 수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원장 수녀에게 말하여 아주 심한 벌을 받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귀가 암브로시오 수사를 넘어뜨리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그 수도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암브로시오 수사에게 조금씩 명예와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쾌락의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결국, 그는 한 여인을 좋아하게 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여동생입니다.
마귀는 암브로시오 수사가 그 여인을 범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때 어머니가 들어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까지 살해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신을 찌르는 수도사의 어깨를 보고는 자기가 철 모를 때 수도회에 버린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암브로시오 수사는 어머니까지 죽이게 된 자신을 보며 비로소 정신을 차립니다. 
 
암브로시오 수사에게 화형이 선고됩니다. 죽기 전에 그는 사탄과 타협을 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줄 테니까 자신 때문에 미쳐버린 여동생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여동생은 정상으로 돌아오고 암브로시오 수사는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며 죽어갑니다.
영화 ‘더 몽크(수도사)’(2011)의 줄거리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어차피 사제가 되기로 한 것, 존경받는 사제가 되자!’ 라는 마음으로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극도의 절제 생활을 하였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혼자 성체조배 하였고, 식사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하루 한 끼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15킬로가 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암브로시오 수사의 초기 모습과 비슷했다고 생각됩니다.
내 안에서 어둠의 힘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사는 삶이 ‘나 자신’을 높이기 위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하늘로 오르는 삶은 나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높여주는 삶입니다. 
 
암브로시오 수사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들어 높여짐이 아닌, 자신이 피해를 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지옥에 가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자신을 잊지 않고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도자가 되고 사제가 되어도 결국 자신이 들어 높여지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가지면 실제로는 낮아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암브로시오 수사에게 어머니의 피는 그 자아가 완전히 죽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 피는 암브로시오를 십자가에 못 박아 만인들 앞에 죄인으로 서게 했고 결국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안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성령과 같습니다.
성령은 십자가로 마치 엘리야를 들어 올린 바람처럼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립니다. 
 
오늘 복음도 어제와 이어지며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새로 태어남에 관해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사람은 행동을 바꿔서가 아니라 새로 태어남을 통해 구원에 이릅니다.
이는 니코데모와 같은 바리사이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니코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 주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새로 나야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새로 나는 방법을 알려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령으로 새로 나셔서 하늘에 계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뱀에 물렸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들어 올린 구리뱀을 보며 상처를 치유하였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각자를 물어 죽이는 뱀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그 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 혹은 당신 뜻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당신 자신이 하늘로 올려짐을 받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들어 올리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성령의 힘으로 그렇게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새로 태어남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는 항상 이런 기도가 울려나올 것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은 아무래도 좋으니 우리만 구해 달라고 십자가에 당신 자신을 매다셨습니다.
우리도 그 십자가를 보며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이웃의 행복을 위해 우리 자신을 못 박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만드는 자아의 독은 누군가의 자아에서 흘러나온 피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구리 뱀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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