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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20 조회수 : 698

4월 20일 [부활 제2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4,23-31
요한 3,1-8 
 
육의 욕망은 하강기류고 영의 욕망은 상승기류다 
 
2008년 7월 어느 날 아침, 자포자기한 듯한 남자가 웨일스의 서부 해안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긴급 구호 번호를 돌렸습니다. 
 
“내가 집사람을 죽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침입한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랑 싸웠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턴이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브라이언 토머스는 몽유병 환자였습니다.
평소에도 침대에서 나와 집 안을 걸어 다니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았고 심지어 뭔가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깨어나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토머스의 어머니에게 그가 잠옷 바람으로 잔디밭을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냥 습관이라고 대답하고 넘기고는 했습니다.
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도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사건 당일도 토머스 부부는 밴을 가지고 캠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부부가 밴에서 자려고 할 때 캠프장 주변에서 젊은이들이 요란하게 자동차 경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청바지를 입고 검은 재킷을 입은 청년이 캠핑카 안으로 들어와 아내를 덮친 것이었습니다.  
 
토머스는 그 청년의 목을 잡고 아내에게서 떼어내려 했습니다.
그 청년은 토머스의 팔을 할퀴며 반격했지만 그럴수록 토머스는 더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그 청년이 절대 움직이지 않았고 그때 잠을 깨게 된 것입니다.
자신 앞에는 자신이 목 졸라 죽인 아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참조: 「습관의 힘; Part 3 사회의 습관」, 찰스 두히그, 갤리온] 
 
우리 안에는 통제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를 육체의 욕망이라고 합니다.
이 욕망에 자신을 맡기면 나중엔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가고 맙니다.
같은 책에 ‘앤지 바크만’이란 여자도 나오는데 그녀는 도박의 바람에 자신을 맡겼다가 부모의 유산까지도 더 잃고 빚쟁이로 남게 된 사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상승기류의 바람, 혹은 하강기류의 바람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욕망에 자신을 맡기면 하강기류에 맡기는 것이고,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면 상승기류에 맡기는 것입니다.  
 
육체와 영의 두 욕구에 동시에 자신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육체의 욕구에 자신을 맡기는 삶에서 영의 욕구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으로의 전환을
‘새로 남’이라 부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것보다 “새로 남”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니코데모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 남은 ‘영’으로 새로 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라고 하십니다.
영으로 새로 난 사람들은 마치 바람에 자신을 맡긴 돛단배처럼 영의 욕구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의 바람에 휩쓸리고 영으로 난 사람은 성령의 바람에 휩쓸립니다. 
 
그런데 영으로 난 사람은 위로 올라갑니다.
이 때문에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불 마차를 타고 하늘로 오른 이유는 성령의 이끌림에 자신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의 바람에 휩쓸려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 12월 22일, 흥남철수작전 때 정원이 60명인 배에는
선장 레너드 라루 선장을 비롯한 47명이 이미 승선해 있었습니다.
끝없는 피난민들을 바라보던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물자와 무기 25만 톤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피난민들도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버리며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16시간 동안의 탑승으로 총 14,000여 명이 배에 탑승합니다.
사람 무게만 700여 톤에 이르고 정원의 230배에 달하는 인원이었습니다.  
 
바닷속의 수천 개의 기뢰의 위험과 추위, 배고픔과 공포 속에서 사흘을 항해한 끝에
5명의 신생아가 탄생하였고 12월 25일 거제도 항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도착하였습니다.  
 
빅토리아호는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제독을 설득시켜 끝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 했던 빅토리아호 레너드 라루 선장은
한국전쟁 후 1954년 마리누스로 이름을 바꾸고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그는 이 철수작전에서 하느님의 힘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추측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그 바람의 방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루 선장이 2001년 사망할 때까지 수도원 동료들은 그가 14,000명을 구한 영웅인지
대부분 몰랐다고 합니다.  
 
미국 교회는 그를 성인품에 추대하기 위해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마리누스는 바다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우리도 어느 바람에 자신을 맡길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 태어남의 시작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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