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사도행전 3,1-10
루카 24,13-35
우리는 성경공부로 성경을 가르치는 이의 믿음을 전수 받는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한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며 또한 생계를 힘들게 만들었고 부활절 미사도 TV로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세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국수주의가 통하지 않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공기가 정화되었으며,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신천지’라는 사이비가 만천하에 드러나서
다행히도 많은 이들이 그들의 약은 방법을 통한 전교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젊은이들이 사이비나 이단의 허황한 교리에 빠질까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보다 성경이 더 중요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경 자체가 문자 그대로 진리인 양 믿는 것에서 이단이나 사이비가 발생하고 또 그런 것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교회에서 요한 묵시록을 성경에서 빼겠다고 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어차피 교회가 교회의 권위로 묵시록을 성경에 넣었으면 교회의 권위로 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 위에 놓으면 안 됩니다.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는 교회에 있습니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19)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들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실 연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시간에 우리의 것을 더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일반대학교에 다닐 때는 집에 ‘여호와의 증인’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도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으로 설득하는 여호와의 증인에 많이 넘어갔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펴며 알려주는 교리들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는 성경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교리도 잘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을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맞서 싸웠습니다.
그때 저는 ‘나주 율리아’도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공공연하게 성모님의 피눈물 흘리는 책자를 성당에서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저도 가감 없이 믿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설명하는 여호와의 증인 앞에 피눈물 흘리는 성모님의 사진을 가져다 놓으니
그들이 설명하는 성경 말씀이 힘을 잃었습니다.
낮은 수준에 있는 사람이 안 되니 그다음은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역시 성경은 모르지만, 나주의 피눈물 흘리는 성모님의 사진으로 맞섰습니다.
그들은 저의 믿음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때 믿었던 성모님의 피눈물 흘리는 것이 조작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나주 율리아가 제병을 휙 던져서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나 성모님의 피가 돼지 피라는 것, 그리고 율신액이라고 하여 나주 율리아의 소변을 나누어 마시는 장면 등이 PD수첩에서 방영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도 무언가를 확고하게 믿어버리면 성경 말씀도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믿음을 확증하게 하는 도구가 성경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
그대는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믿음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다음이 그 믿음을 통해 성경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성경은 교육하는 데 유익합니다. 이 순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을 배울 때 성경의 진리를 배우기보다는
그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의 믿음을 배우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당신 부활에 관한 말씀을 성경을 통해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십니다.
이미 그 제자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완전하지 않기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의 지식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약함을 나무라십니다.
그들은 비로소 성경을 알려주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알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공부한다고 해서 오류에 빠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누구든 그 가르치는 사람의 믿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성경이 아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의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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