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생각을 묻는 사람에겐 정체성으로 대답해야!
많은 경우에 생각의 차이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고 결국엔 사이가 갈라집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논리로 반박해서는 싸움만 됩니다.
그러나 말싸움을 해서 많은 것이 달라지나요?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놓고 누구 생각이 옳으냐고 따지는 것만큼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도
없습니다. 논쟁을 피하십시오.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상처만 남습니다.
하루는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이 서로 다투었습니다.
서로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 고집했습니다. 해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나뭇잎은 초록빛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바삐 움직인다. 그 결과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반면 달은 다르게 주장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나뭇잎은 은빛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이렇게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내세웠습니다.
그때 바람이 지나가다가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람이 웃으면서 중재에 나섰습니다.
“얘들아, 그만 싸워. 너희들은 괜히 싸우고 있는 거야!
나는 너희들이 알다시피 낮에 해가 떠 있을 때도 불고, 밤에 달이 떠 있을 때도 불잖아?
그러니 내가 다 아니까 말해줄게. 낮에 해가 떠오르면 해가 말한 그대로야.
나뭇잎은 초록빛이 되고 또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그 결과 세상은 시끄러워진단다.
그러다가도 밤에 달이 뜨게 되면 사정은 달라져. 달이 말한 대로 된단다.
나뭇잎은 은빛이 되고 또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잠에 곯아떨어진단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거야.
어디 그것뿐인 줄 아니?
행여 구름이 달빛을 가리게 되면 나뭇잎은 빛을 잃어버리고 검은색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단다.
너희들은 전부를 알지 못하고 극히 작은 한 부분만 알고 있어서 쓸데없이 서로들 싸우고 있는 거야.”
해와 달의 입장에서는 바람이 매우 얄미울 것입니다.
그리고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서로의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너는 해고, 너는 달이야!”라고 말해주는 것이 현명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얄미워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모세의 법을 들먹이며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각’을 묻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셨다면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관한 생각을 말해 달라고 했는데,
“너희도 죄인임을 깨달아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네 자신을 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생각은 욕구에 지배당합니다.’ 내가 배우자를 이기고 싶다면 나의 온 생각은 그 목적을 위해 갖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말싸움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다 끝나버립니다.
돌을 들면 던질 곳만 찾게 되어있습니다.
이미 어떤 욕구가 지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생각을 바꾸려고 해도 욕구에 묶여
그 욕구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은 욕구에 지배당합니다.
그런데 ‘욕구는 정체성에 지배당합니다.’
내가 의사이면 병을 치료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납니다.
그러나 자기를 아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욕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욕구가 바뀌면 생각도 바뀌게 됩니다.
따라서 생각을 바꾸려면 정체성을 바꿔줘야 합니다.
물론 새로운 정체성은 누군가의 피 흘림으로써만 얻어집니다.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 태어남이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는 피를 흘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라고 하시며, 한 간음한 여인의 죄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용서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주시기 위해 유다인들로부터 죽임을 감수하셔야 하셨습니다.
사람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보다 정체성을 바꿔주십시오.
한 아이가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 책임으로 여기고 비뚤어졌습니다.
매번 경찰서에 가서 아버지가 빌어야 했습니다.
한 번은 이번은 안 된다고 말하는 젊은 경찰에게
“저희 아이가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마지막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라고 무릎 꿇고 청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마음을 잡고 서울 소재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잔소리로 그 아이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면 평생 싸움만 하다 끝났을 것입니다.
논쟁을 피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피 흘림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주십시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과 논쟁하는 사람은 자신도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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