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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25 조회수 : 574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축일]


​나를 낮추는 말보다 나를 높이는 말이 믿기 더 어렵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커다란 믿음의 시험을 받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니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믿음의 도전입니다. 
 
어찌 보면 그냥 “아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말보다 높이는 말을 더 믿기 어려워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만약 누가 “나는 네가 어젯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섬뜩할까요?  
 
이것이 나를 높여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높아지면 그 높은 수준의 삶을 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낮추려 합니다. 
 
즈카르야는 예언자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수행해야 하는 소명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남과 다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영국의 살아있는 비너스, 앨리슨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래퍼는 두 팔이 없고 기형적으로 짧은 다리를 지니고 태어나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19년 동안 복지시설에서 자랐습니다.
스물한 살 때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 때문에 9개월 만에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몸으로 혼자서 아들 패리스를 낳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겸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불편한 자신의 몸을 숨기지 않고 작품의 소재로 삼는 등 적극적인 방식으로 장애를 극복했으며, 2003년에 스페인 ‘올해의 여성상’과 영국 왕실에서 수여하는 ‘대영제국 국민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세계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행복하다. 장애인을 일컫는 ‘disable’이란 말은 사회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 앨리슨,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래퍼는 작품 활동을 할 때마다 장애인의 몸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다름이 내 몸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했으며,
나아가서 자부심마저 느꼈다고 말합니다. 
 
[출처: ‘안식일학교; 교과토의 자료, 제9과 자존감, 다음 카페] 
 
 
사람의 삶의 질은 ‘자신이 어느 만큼 귀중한 존재이냐는 믿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까지 믿으셨습니다.  
 
사실 우리도 교회라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나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에 “아멘!” 하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교리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
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로 보내 주신 이 은혜를 이해하십니까-
놀라고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는 온전히 한 인간입니다.”(795)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면, 그분의 뜻을 따라주기는 해야겠지만, 하느님의 유일한 자녀와 한 몸으로서 두려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하느님은 성모 마리아에게서처럼 우리에게도 이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나의 정체성이 되고, 나의 정체성만큼 변한 삶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핵심이 담긴 교리를 하나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바로 이 때문에 ‘말씀’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과 친교를 맺고, 자녀 됨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성자께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460) 
 
하느님께서 저희를 하느님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이 나와 분명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까지 믿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들어 높여주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있습니까?
하느님이 된다는 것까지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모 마리아의 믿음을 닮으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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