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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21 조회수 : 511

3월 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내가 반응하는 대상이 나의 수준이다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소크라테스만큼 유명했던 인물이 그의 아내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했습니다.
그날도 무슨 일로 화가 났는지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퍼부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머리를 닦으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비가 내리는 법이라네.” 
 
아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너무나 태연한 소크라테스도 문제는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더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아내의 분노에 초연할 줄 아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또한 본받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약 그때 맞서 싸웠다면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철학자라기보다는 아내와 같은 수준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스스로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사이가 나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자비만을 청하는 세리도 나옵니다.  
 
바리사이는 세리 같은 사람들보다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하지 못한 자신의 자세를 뉘우칩니다.  
 
바리사이는 이웃보다 잘살고 있으면 잘사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웃보다 잘살고 있음을 알려면 이웃을 평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가 그를 깎아내리면 참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세리는 바리사이가 뭐라 해도 발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원래 부족한 인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라고 하십니다.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타인의 심판에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그냥 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내가 타인을 심판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언제나 부족한 자녀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당신을 심판한다고 분노에 차서 반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심판받으실 때 침묵하셨습니다. 
이 침묵의 의미는 당신께서 다른 수준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반응하면 같은 수준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물론 우리가 완전히 하느님의 본성에 이르지 못하고 아직도 육체의 인간으로 살고 있어서 
세상의 심판에 아주 무관하게 살아가기는 힘듭니다. 
그렇더라도 자주 내가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이웃의 심판에 자유롭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홀트 이반 판사는 살인을 저지른 27세의 한 여인에게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아파했습니다. 살인의 동기가 너무 사소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이웃과 한화로 100원도 안 되는 5센트를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총으로 상대를 쏘았던 것입니다.


5센트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수준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 수준에 맞게 살고 죽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것에 반응하는 수준이 아니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5센트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듯 그러한 수준의 사람들이 사는 삶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내가 반응하는 대상을 보고 내가 어느 수렁에 빠져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믿음의 줄을 잡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 항상 살핍시다. 

자신을 보고 짖는 개에 반응하면 자신도 개가 될 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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