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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19 조회수 : 672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

구원은 구원의 필요를 아는 이에게 맡겨진다 

한 부자가 죽기 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천당에 갖고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어느 날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네 기도가 응답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트렁크 가방 하나에만 채워가라.”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부자는 여러 가지 궁리를 했습니다.
현금으로 채울까? 유가증권으로 채울까? 진품 명품으로 채울까?
그러다가 부자는 황금 덩어리로 채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결정 내렸습니다. 
 
얼마 안 있어 부자는 이 땅을 하직하고 천당에 갔습니다.
천당에 가는 동안 아주 큰 고생을 했습니다. 트렁크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황금이 든 큰 트렁크를 가지고 낑낑대며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문을 지키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힘들게 갖고 오십니까?”
부자는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제 재산인데 특별히 허락받고 갖고 오는 겁니다.” 
 
“여태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허락을 받았다니 그럼 어디 봅시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며 가방을 열게 했습니다.
가방이 열리니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자는 얼굴의 땀을 닦으며 그것 보라는 듯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천당의 모든 길은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도로포장 재료를 가지고 오셨군요. 수고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가져가야 하는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요?
부자가 황금을 가치 있다고 여기면서 잃게 된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헨리 나우웬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너는 보물을 발견한 사실에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보물을 발견했다고 해서 네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보물을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보물은 발견하는 것보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을 위해 다른 가치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물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보물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아니면 다 지옥행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입니다.
겁주기 위해 지옥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다 지옥입니다.
이것은 교리입니다.  
 
지옥은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교회는 “죽을죄의 상태에서 죽는 사람들의 영혼은 죽은 다음 곧바로 지옥으로 내려가며,
그곳에서 지옥의 고통, 곧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는다.”(1035)라고 가르칩니다.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는 죄가 씻겨져야 합니다.
우리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유일한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세워진 성사이고 교회에 맡겨졌습니다.  
 
교회에 맡겨진 성사가 곧 그리스도이고 그 성사의 가치를 알아야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줄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맡겨주신 성체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성 요셉은 어떠한 믿음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맡기실 수 있으셨을까요?
성 요셉의 수많은 훌륭한 덕이 있겠지만, 오늘은 그분의 믿음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천사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 말은 그분이 아니면 누구도 죄에서 구원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온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유일한 구원자의 양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부담이겠습니까?
자신의 잘못으로 아기 예수님이 다치거나 혹 죽게 되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다려온 인류의 구원이 허사가 됩니다.
자신이 맡은 가치를 알아, 이런 부담을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야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맡겨주십니다.  
 
요셉 성인은 온 인류의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하면
수천 번이라도 바칠 준비가 되신 분이셨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분이 누구이신지 알기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다이아몬드광산 개발이 시작된 것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한 상인이 남아공의 어느 마을에 머물렀을 때 선반 위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상인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저 돌멩이는 누구의 것입니까?”
“저것은 내 아들이 산에서 주어온 것입니다.” 
 
상인은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당신 아들을 위해 좋은 장난감을 하나 줄 테니 저 돌멩이를 내게 주지 않겠소?”
주인은 선반에 놓인 광채 나는 돌멩이를 상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제 아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주인은 상인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것이 값비싼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결국, 이 돌은 케이프타운의 보석상에게 12만 5천 달러에 팔렸습니다.
지금은 수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지금 가톨릭의 신앙이 매우 흐려지고 무뎌졌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성당을 마음의 평화를 위해 다닌다고 합니다.
집안이 건강하고 잘 되기 위해 다닌다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성공이나 가정의 안녕과 내면의 평화를 주는 방법은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당은 지옥에 안 가기 위해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구원을 주는 곳이 됩니다.
그래야 구원을 위해 우리 손바닥 위에 올려지는 그리스도의 성체의 가치가 제대로 보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관광객이 오지 않으니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의 물이 처음으로 맑아졌고
지나다니는 물고기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대기도 맑아진 느낌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신앙도 이렇게 깨끗해진 모습으로 이 힘든 시기를 함께 위로하고 인내하며 부활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어쩌면 한국과 바티칸 교회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이렇게 오랜 기간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시기를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정말 성체가  
 
우리 구원의 유일한 희망임을 믿는가?’
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성체 한 번 영하기 위해 몇 달을 산길을 넘어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호랑이에 물려 죽고 눈 속에서 파묻혀 죽었지만 성체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지금은 주차장이 부족하다거나, 여행을 가야 할 일이 있다고 주일이 되어도 성체를 영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어떤 분들은 정말 보석을 장난감과 맞바꾸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요셉 성인처럼 성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손바닥 위에 놓인 성체를 바라보며, 이것이 아니면 다 지옥행임을 절실히 믿을 때, 양식이 되기 위해 말 밥통에 놓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요셉의 마음과 같아질 것입니다.  
 
성체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도를 바쳐야겠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교훈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체는 우리를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보물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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