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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3-16 조회수 : 607

3월 16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충고를 들을 때 화가 난다면 나의 확신에 교만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망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그의 불같은 성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머리가 명석하고, 관찰력이 깊고, 예리한 판단력과 비상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나 화를 잘 내는지 자기의 비위를 조금만 거슬려도 미움과 분노가 충천하므로,  
 
그의 부하들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 등 자유 진영과 힘겨운 전쟁을 하면서도 참모들의 말을 무시하고 주력부대를 빼돌려 러시아를 침공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그의 일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러시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러시아의 크기와 날씨 탓에 히틀러의 군대는 전멸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긴박한 상황에서도 히틀러는 참모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한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러시아로 향하는 기갑 사단을 만 쪽으로 돌렸다면 상륙을 저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충고를 할 때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암울할 뿐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아만이 엘리사를 통해 나병이 치유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아만은 시리아 사람이었는데 거의 자신들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로 나병의 치유를 위해 내려옵니다.  
 
이때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이 도착했을 때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으라는 말을 전합니다.  
 
미국 국방성 장관이 한 시골 본당 신부를 찾아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냇가에 가서 목욕이나 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무시당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화는 일반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들어 높인 사람들의 전유물입니다.  
 
이때 부하들이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설득합니다.  
 
그러자 마음이 누그러져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고 그 덕분으로 나병이 치유됩니다.
나아만은 화를 이기고 자신의 의견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자렛 사람들에게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라고 하시며, 나아만과 사렙타 과부의 사례를 그 예로 들었을 때 나자렛 사람들은 화를 내며 예수님을 절벽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들이 만약 화가 난다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이 교만과 하나가 되어있음을 깨달았더라면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간을 이식해주려면 간과 붙어있는 쓸개도 함께 잘라내야 합니다.
간만 따로 잘라서 이식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 기술상으로는 간에 붙어있는 쓸개를
분리하고 자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나 확신을 바꾸기가 어려운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믿음 안에는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얽힌 것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을 바꾸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럴 때 자주 쓰는 방법이 ‘화’라는 감정입니다.
화를 내어서 분명 자신에게 화가 나니 자기 생각이 옳다고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화를 자신의 확신을 바꿀 수 없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신천지에 빠진 이들이 왜 신천지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일까요?
사실 교리는 허접하기 짝이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몇 달 동안 친구들과는 다 끊어지고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 주위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신천지 신도들뿐이기 때문입니다.  
 
교리만이 아니라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그것을 잃기 싫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이 몇 달, 몇 년 동안 확신을 두고 믿었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 믿음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바보였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창피해서 믿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믿음을 바꾸라고 충고하면 성을 내며 그 핑계로 절대 믿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을 바꾸는 것은 곧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만약 나에게 무언가를 충고할 때 화가 올라온다면 이는 분명 암세포가 섞인 오염된 확신입니다.
분명 그 확신과 나의 교만이 함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확신은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교만에 의해 생긴 믿음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일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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