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재의 수요일]
자존감이 있어야 자기 비하를 즐길 수 있다
3명의 신자 할머니들이 자식 자랑으로 수다를 떨다가 아들 자랑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할머니는 “우리 아들은 주교라우. 남들은 울 아들더러 ‘오~고귀한 분!’이라고 하지.”
그런데 두 번째 할머니는,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아들은 추기경이라오.
남들이 우리 아들 보고 ‘최고로 귀한 분’이라고 그러는구먼.”
이때 마지막 세 번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좀 이상하게 생기긴 했는데, 남들이 울 아들을 보면 한결같이 이러는 기라.
‘OH! MY GOD!’”
위 세 명의 할머니들 중에 자존감이 가장 높은 할머니는 누구일까요?
자기 자녀들을 자랑하여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는 첫 두 할머니보다, 자녀를 조금 비하하여서라도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할머니일 것입니다.
이미 자존감이 있다면 조금 자신을 조금 비하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자존감’이 강조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와 반대되는 ‘자기 비하’는 끔찍이도 싫어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위리아드 가이린(Willard Gaylin)이 말하기를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은 진흙덩이를 갖고 노는 아이와 같다.
그것을 오래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 옷과 몸을 버려 놓는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비하는 자존감을 떨어뜨려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의 성인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몽당연필, 모래알,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 등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어떤 성인은 자신을 구더기보다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분들은 자존감이 낮으셨던 분들일까요?
이분들은 그렇게 자기 비하를 ‘기쁘게’ 할 줄 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실패와 좌절에 못 이겨 자기 비하를 하면 그것은 자존감이 낮은 것이지만 기쁘게 자신을 낮추면 그 사람은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기쁘게 자기를 비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처음에 흙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시작점을 명확히 알아야합니다.
인간은 인간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먼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본래 먼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 먼지를 인간으로 만들고 또한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성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성전들은 다 처음엔 먼지였습니다.
내가 성전임을 아니까 먼지였을 때를 기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 자신이 먼지였음을 기억하며 자신을 당신 성전으로 삼아주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 시작하지 않았고 먼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재를 뿌리며 사제가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먼지에 불과했으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먼지로부터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지은 고귀한 존재라고 여깁니다.
그러니 누가 그렇게 대우해주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그렇게 대해달라고 기도와 선행을 많이 하고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합니다.
오늘 복음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자신이 먼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이미 많은 은총을 받아 흥분에 넘친 상태로 살아갑니다.
하느님께 인정받았음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올 사순은 우리가 먼지였음을 기억하면서 시작합시다.
그리고 그것을 기쁘고 자랑스럽게 자기 비하를 합시다.
사실은 우리는 먼지보다 못한 수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존재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자존감이 있어야 자기비하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기쁘게 낮추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