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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2-20 조회수 : 492

2월 20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인간적이 되다가 사탄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조커’(2019)는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악의 화신이 되어 가는지를 담아내었습니다.
광대복장을 입고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에게 젊은 아이들은 구타하고 조롱하며 가진 것을 빼앗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 자신이 시장 밑에서 일할 때 태어난 고담시의 시장 아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 생활에서 조금은 나아질 수 있는 기대를 갖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도 어머니의 망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사실 아들을 감금하고 폭행하였습니다.
믿을 사람은 어머니 한 분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자신을 학대하고 이용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조커는 지금까지 자신을 속여 온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던 이들에게
보복을 합니다.
그리고 고담시티의 악의 상징이 됩니다. 
 
이 영화는 조커가 끊임없이 관객을 향해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는 ‘보통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는 다 조커가 될 수밖에 없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악이 정당화됩니다. 
 
우리는 한 평범하고 모범적인 직장인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유태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데 유용한 시스템을 고안하여 학살을 도운 1급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입니다.  
 
그도 그저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공무원으로서 승진하려고 나라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 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사탄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적인 게 그렇게 나쁜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적인 것이 좋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사탄이 되게도 만듭니다.  
 
아무리 세상의 많은 악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도 ‘인간이니까 이럴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으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자신이 짐승이라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인간적이라는 말은 거의 사탄이 되는 것까지도 정당화하는 말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인간적이 되어버린 베드로에게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여기에서 “생각하는구나.”의 단어는 ‘프로네오’인데 ‘흥미를 가지다, 관심을 가지다.
애정을 두다.’란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에 관심을 가지면 사탄까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탄이 되려고 해서 사탄이 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사탄이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사탄도 자신들은 영원한 종이고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분개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질투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적인 것이 사람을 사탄도 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조커가 ‘나는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만 가졌어도 끊임없이 ‘인간이면 다 이럴 거야!’라는 자기 합리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하느님을 거슬렀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처지가 요구하는 것을 거슬렀으며, 결국은 자신의 선익을 거슬렀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였다.”(「가톨릭교회교리서」, 398)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만들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느님이 되라는 악마의 유혹에 이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적이 되다가 사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것 안에 하느님과 대적할 모든 요소들이 들어갑니다. 
 
자기 자신의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을 누르는 길은 이미 우리가 하느님이 되었음을 믿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신처럼 되려고 죄를 짓는다면 이미 신이 되었다는 믿음이 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성체성혈로 하느님의 본성을 모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성체를 하느님이라 믿는다면 그 성체를 영한 우리도 하느님이라 믿어도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어야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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