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몰랐다.”는 핑계는 나를 계속 무식하게 만든다
1962년 2월 10일, 여수 남국민학교 졸업식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합니다.
졸업식장에서 회색 스웨터에 까만 낡은 바지를 입은 중년부인이 노력상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이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자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나갈 듯했고 졸업하는 그 부인의 딸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노력상을 받은 어머니와 딸은 세 채밖에 집이 없는 외딴 섬에 살았습니다.
주민이라고는 겨우 20명뿐인 이 섬에서는 제일 가까운 여수에 볼 일이 있어도 섬사람들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여덟 살이 되자 남편에게 딸을 육지에서 공부시키자는 말을 어렵게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은 20리나 되는 뱃길을 어떻게 다닐 수가 있겠느냐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 섬이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을 굽히지 않고 딸을 남편 몰래 육지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로부터 6년,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20리나 되는 험한 물결을 가로지르며 손수 노를 저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섬으로 돌아와 밭일을 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배를 타고 딸을 데려와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딸도 울고 그 어머니도 울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육지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두려워 울었고 어머니는 딸을 데리러 가는 길이 늦어 딸이 애처로워 죽는 힘을 다해 노를 저으며 울었습니다.
시계도 없는 섬에서 매일 시간을 맞춰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에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년을 하루같이 오간 뱃길이 무려 3만 3천리나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졸업생과 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의 감격스러운 울음으로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몰랐어요!”란 핑계를 많이 댑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꼭 핑계가 될 수없는 이유는 알려고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알면 지켜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에 “몰랐어요!”의 핑계가 더 적용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몰랐다는 핑계는 이렇게 계속 자신의 무지를 정당화하며
참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피곤한 상태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도 나오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끝까지 쫓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귀찮아하시지 않고 진리를 갈구하는 그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제자들은 피곤하니 당신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어제 서울 모 성당에서 저의 책을 일 년 동안 전 신자들이 영적독서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해서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특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날씨도 추워졌고 더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신자들이 적게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8시가 되자 강의를 듣기 위해 거의 교중미사 수준으로 신자들이 성당을 채웠습니다.
저도 그분들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열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인 저도 그럴진대 하느님께서야 당신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이가 얼마나 짠해 보이겠습니까?
그러니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진리를 알고 싶은 우리의 열망입니다.
그 열망만 있다면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분명 알 수 있었던 것들이기에 몰랐다고만 핑계를 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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