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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26 조회수 : 553

1월 26일 [연중 제3주일]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어둠의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언터쳐블 1%의 우정’이란 영화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추락하여 반신불수가 된 한 백만장자와 취직은 하지 않고 나라의 돈만 받아먹고 살아가는 무일푼 건달간의 우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고집스럽고 짜증만 내는 이 백만장자의 간병인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면접을 봅니다. 
그저 면접을 봤다는 도장이 있어야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찾아온 드리스는 진부한 면접자들 틈에서 합격되어 
고용인의 성격 때문에 아무도 못 버티는 2주간을 버텨보기로 합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이란 말이 있듯이 
‘언터쳐블’ 또한 백만장자와 가난한 건달과의 거리를 말해주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드리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백만장자 앞에서 겁내 않고 담배도 물려주고 휠체어 속도도 불법으로 개조하여 빠르게 만들어주고 마사지 숍도 데리고 가서 사고 이후 느끼지 못했던 삶들을 다시 체험하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그는 잘려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직을 하려고 했었다는 도장만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결국 드리스가 개인 사정으로 필립을 떠나야만 했을 때 필립은 드리스를 보내줍니다. 
그러나 새로운 간병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한 인간이 아닌 환자로 대하고 친구가 아닌 돈 많은 고용인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자신을 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드리스는 다른 곳에 취직하여 잘 살고 있었지만 다시 필립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필립이 펜팔로만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를 만나게 해 줍니다.  
 
자신의 몸이 성하지 않아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던 드리스가 그 여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해 준 것입니다.  
 
필립은 펜팔 친구와 혼인하여 두 아이를 두고 잘 살게 되고 드리스와의 우정도 지금까지 계속 된다고 합니다. 
드리스와 필립,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이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시작할 당시의 모습을 이사야의 예언을 되풀이하며 상징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어둠의 빛으로 오시는 분입니다. 
빛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어둠이라는 뜻입니다. 
아니 자신들이 어둠임을 인정하는 이들입니다. 
자신들이 이미 빛이라고 하는 이들은 더 이상 빛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한 1,9-10) 
 
이렇게 빛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이미 빛이고 자신들의 눈으로 잘 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0-41)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십니다.
‘회개’는 하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 먼저 행해져야 하는 무엇입니다. 
우리는 회개가 술 끊고 담배 끊고 미사 열심히 나오는 등의 이야기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회개가 아니라 결심입니다.  
 
회개를 한 번만 한다면 하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개가 바로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은 어둠이고 예수님은 빛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바리사이들이란 아직 자신들이 어둠이기 때문에 빛이신 예수님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회개에 이르지 못한 이들인 것입니다. 
 
위 영화에서 드리스는 흑인으로 나옵니다. 
아프라카에서 입양되어 온 아주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필립은 클래식과 그림, 오페라와 같은 고상한 것들을 감상하며 높은 사람들과 사귀는 
귀족입니다.  
 
필립은 가난하고 헐벗고 글도 제대로 모르는 그 흑인이 어떻게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빛이요 그가 어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드리스가 빛이었고 필립은 그 빛을 필요로 하는 어둠이었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드리스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필립은 자기가 속으로 좋아하는 여자와 한 번 만나자는 말도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 죽는 운명을 맞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음이고 드리스가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빛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백해무익한 어둠이요 죽음임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어둠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될까요?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다면 어둠임을 깨달은 것일까요? 
 
마더 데레사가 젊으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어느 빈민굴을 방문했습니다. 
한 청년을 만났는데 씻지도 않고 방도 청소하지 않아 돼지우리 저리가라 할 만한 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방엔 램프가 있었지만 그 청년은 그 램프를 켜지 않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램프가 있는데 왜 켜지 않느냐며 그 램프를 켰습니다. 
그 청년은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냐며 화를 내고 다시 램프를 껐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지지 않고 다시 램프를 켰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마침내 화가 난 청년은 램프를 밖으로 내던져 깨 버렸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집으로 돌아가 새 램프를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 불을 밝혀주고 돌아갔습니다. 
 
10년 정도가 지나 우연찮게 그 청년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같은 빈민굴에 살고 있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알려주는 수녀에게 데레사 수녀를 보면 이렇게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키 작은 수녀님께 전해 주시오. 
당신의 등불이 지금도 내 생활 속에 불타고 있다고 (Your light is still burning in my life)”
빛은 나를 빛으로 만들려는 성격이 있습니다. 
불은 옮아 붙습니다. 
이전의 나를 태워 빛을 닮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변해가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곧 죽음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빛을 필요로 하게 되어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거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면 본인이 어둠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에 머물기 싫어서 빛을 간직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미장원에 갔는데 의외로 머리가 잘 나왔다면 다른 미장원을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주님 없이는 어둠이요 죽음임을 깨달은 사람은 빛만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이십니다. 
회개란 그분만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는 존재가 바로 나임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 회개가 먼저 일어나지 않으면 하늘 나라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분이 나의 생명이 되게 합시다. 
그분이 나의 공기가 되게 합시다. 
그분이 나의 양식과 음료가 되게 합시다. 
그리스도는 빛이신데, 빛도 그만큼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은 빛만으로 만족하고 빛만 찾고 빛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 땅에 주님께서 오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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