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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19 조회수 : 480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 성령은 하느님의 피다 > 
 
스웨덴 한 시골마을에도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커브가 5개나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운전기사는 능숙한 솜씨로 커브를 틀었고 이제 곧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길 한 가운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경적을 울렸고 아이들은 재빨리 길가로 피했습니다.
한 아이만이 신발이 벗겨진 채 버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아이를 피하던지 절벽으로 차를 몰아붙이던지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결국 아이를 희생시키기로 결심을 하였고 아이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비탈에 차를 세워둔 버스 기사는 황급히 뛰어내려 아이에게로 달려가서 아이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버스에 탔던 사람들은 운전기사를 탓했습니다.
운전 실력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는 인간이라며 심지어는 고발하겠다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버스 기사는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버스에 함께 탔던 한 노파가 말했습니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다 죽는 편이 낫습니까?
저 운전기사는 우리 대신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제야 운전기사가 아이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며 흐느끼는지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흑흑!”
누구도 더 이상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도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 정결례가 발전한 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죄를 없애는 것이 세례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소개시켜 줍니다.
요한의 세례는 참 세례를 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볼 수 있게 하는 씻음인 것입니다. 
 
요한에 따르면 하느님의 어린양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은 성령을 받은 분이셔야만 합니다.
어떤 인간이든 받은 것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주라고 요한을 보내신 분께서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통해 씻겨야 하는 인간의 죄는 무엇일까요?
새로 태어나기 위해 벗어버려야 하는 인간의 옛 본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를 알게 되면 기어 다니고 싶은 본성을 벗어버리고 걷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만약 두 발로 걷게 된다면 옛 본성에서 깨끗해진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모의 희생이 요구됩니다.
부모의 희생이 아이에게 믿음을 주어 옛 본성을 정화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으로 살고 싶은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하느님의 본성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인간의 본성을 벗겨버리는 힘이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하느님의 희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에서 사무라이가 되고 싶은 천민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민은 사무라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성을 짓는 성주에게 가서 자신이 그 기둥에 들어갈 테니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 교육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성을 지을 때 기둥에 산 사람을 넣고 지으면 그 성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는 그 성에서 사무라이 교육을 받았고 귀족 아이들의 괴롭힘에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가 들어가 계신 기둥을 부여잡고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나오는 그 피는 도망치고 싶은 그 아이의 자아를 죽여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사무라이로 새로 태어납니다. 
 
이전 본성을 죽일 수 있는 힘은 ‘피’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본성을 씻어주시기 위해 피를 흘리셔야 했습니다.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바다를 왜 ‘홍해’, 즉 ‘붉은 바다’라고 하였을까요?
옛 본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어린양의 ‘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닷물은 십자가의 신비를 상징하고” 그 물에 세례를 받는 것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함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220항)고 가르칩니다.  
 
누구든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이루어진 그 붉은 바다를 건너면 옛 본성이 그 피 속에 수장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지닌 인간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들의 옷을 깨끗이 빤 정결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묵시 7,14 참조).  
 
예수님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고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냥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라고도 말합니다(1코린 12,13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작용으로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981항)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피가 곧 성령이고 그 성령으로 인간의 옛 본성인 죄가 씻기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할 때 성령으로 죄가 사해집니다.
그 성령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임을 안다면 비로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 할 때마다 자신의 자녀의 팔을 하나씩 잘라야 한다면 죄를 지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 사함의 값이 그리스도의 목숨 값임을 믿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믿어야만 그 효과를 발휘하듯 성령도 그리스도의 피임을 믿어야만 우리가 정화됩니다.  
 
기도를 통해 오시는 성령의 은총이 하느님의 피 흘리심임을 믿으며 “아멘!”합시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물과 피와 성령은 하나로 모아집니다(1요한 5,8 참조).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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