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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16 조회수 : 574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순종보다 큰 가치는 없다 >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습니다.
어느 군인이 그 날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 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교들도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휘관은 말했습니다.
“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군인의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평가하실 때도 같은 방식으로 하실 것입니다.
더 많이 선교하는 사람보다 순종하여 선교의 길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죽이는 것만큼 큰 선교는 없습니다. 
 
ㅣ오늘 복음에서 나병을 치유 받은 사람은 너무 기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이 알리고 퍼뜨렸습니다.
그것이 주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순종하는 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더 깊이 감동합니다. 
 
요즘 순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의 책을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주십니다.
그러다보니 그 내용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시는 분들도 생겨납니다.
가장 큰 거부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이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사람이 하느님이라 믿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기존 교리에 익숙하신 분들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지 하느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임을 믿지 않으면 인간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성체로 영하고 그분과 한 몸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란 믿음을 가져야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자신이 인간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물 위를 걸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늑대에게 자란 아이들이 자신을 늑대라고 믿는 이상 인간처럼 두 발로 걸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믿는 본성 속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느님임을 믿어야합니다.
그래야 인간의 본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믿는 만큼 성장합니다.
유태인들이 큰 성과를 올리며 사는 이유는 자신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다가 있을 때 바다를 가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 위를 걸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인간이란 믿음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뗏목을 만들고 배를 만듭니다.
그런 식으론 베드로의 믿음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베드로 교회에 속하려면 먼저 하느님임을 믿고 하느님이라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믿어야합니다. 
 
​하느님만이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습니다. “
하느님처럼”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소유하고 먹고 서로를 심판하였습니다.
이미 하느님이 되었다고 믿어야 자신을 하느님처럼 만드는 이런저런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미 하느님임을 믿지 않으면 하느님처럼 되려는 자아에 사로잡힙니다.
이미 하느님임을 믿어야 물 위를 걷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치유 받은 병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은 치유 받았지만 자신이 하느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가 마음까지 치유 받고 믿을 줄 알았다면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되어야 부족한 것이 없어지고 부족한 것이 없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보답하려 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신 것에 가장 합당한 보답이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 자신을 하느님의 본성으로
올려주신 분께 보답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보다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성 아타나시오의 말을 빌려 “그분은(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라고 가르치며, 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말을 빌려 “하느님의 외아들은 ...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460항)라고 가르칩니다.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요한 10,35)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고 교리서가 가르치는데 내가 하느님이라 믿는다고 해서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오히려 믿지 않는 것이 잘못입니다. 
 
그럼에도 만약 교도권에서 “책을 이러저러하게 수정해라”,
혹은 “이 책을 더 이상 팔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럴 때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고치라면 고치고 책을 더 이상 인쇄하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주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는 길임이 확실합니다.  
 
순종보다 더 큰 복음적 가치는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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