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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04 조회수 : 552

1월 4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 피가 있는 공동체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 

토니 던지의 꿈은 미식축구팀 감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던지는 ‘습관’의 형성을 강조했습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자동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덕분에 어떠한 구단도 그를 감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코치법이 그리 혁신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1996년 미국 프로 미식축구 리그 역사상 최악의 팀으로 평가받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신임감독으로 초대받게 됩니다.
던지는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반복된 훈련을 통해 생각하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였습니다. 
생각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몸을 경직시켜 결국 판단력까지 흐려지게 만든다는 것을  
 
던지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던지는 버커니어스는 선수들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 하나만으로 
최악의 팀을 강력한 팀으로 만들어 승승장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강팀으로 변모한 버커니어스가 플레이오프에 나가 큰 경기를 할 때마다 
매번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강팀으로 탈바꿈한 팀으로서 받는 팬들의 기대가 그들이 더 이상 자동적인 움직임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다시 자기 생각으로 경기를 풀어가게 만들었습니다. 
 
던지는 말합니다.
“우리는 훈련을 반복했고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큰 경기에 진출하면 훈련 받은 걸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선수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 시스템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맞으면 그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던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2년 연속 슈퍼볼 경기에 진출하지 못하자 해임통보를 받습니다.
일주일 뒤 던지에게 구조 요청을 한 팀은 역시 한 해 동안 참담한 시즌을 보낸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였습니다. 
던지는 똑같은 전략을 시행했습니다. 
물론 콜츠도 강력한 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시즌에서는 선수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긴장하여 
버커니어스 때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콜츠가 정규 시즌을 14승 2패의 역사상 최고 성적으로 마친 2005년 성탄절에 끔찍한 비극이 닥쳤습니다. 
던지의 큰아들, 제이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힘이 팀 전체를 감쌌습니다. 
모두가 감독을 위로하기 위해 전적으로 감독을 믿기로 한 것입니다.
한 선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는 계약 조건과 연복을 걱정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던지 감독이 장례식을 끝내고 복귀했을 때 나는 감독에게 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상처를 어떻게든 덜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팀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콜츠 선수들의 믿음은 이 비극으로부터 출발하였고 던지의 전술을 온전히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전술이 ‘진리’라면 그 전술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힘이 ‘은총’입니다.  
 
은총과 진리로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데, 
은총은 그 팀을 이끄는 감독의 ‘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해에 콜츠는 슈퍼볼을 향한 콜츠의 열망을 두 번이나 좌절시켰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역사에 남을 명경기로 역전승하며 슈퍼볼에 진출합니다. 
그리고 슈퍼볼에서도 승리를 거둡니다. 
선수들은 “우리의 리더, 던지 감독을 위해 승리해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던지 감독은 미국 프로 미식축구 역사에서 10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유일한 감독이 되었고, 슈퍼볼에서 승리한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었으며, 프로 선수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참조: 「습관의 힘; PART 1. 개인의 습관」, 찰스 두히그, 갤리온]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믿게 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원수를 미워하게 시스템 되어 태어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생각’이라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가능합니다.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만을 참 소명으로 여기면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하룻밤을 묵기를 원했던 시각이 “오후 네 시쯤이었다.”(요한 1,39)라고 합니다. 
본래 “제10시였다.”가 맞습니다.  
 
성경에서 ‘10’은 계명을 상징하고 하느님의 계명이란 바로 ‘사랑’입니다. 
요한이 제10시를 강조한 이유는 그리스도와 머물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하느님의 힘이 나를 통해 작용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오늘 복음의 두 제자처럼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요한 1,41)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부모의 ‘피’가 자녀가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 새로 태어나게 하듯,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교회 내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두 명이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다고 말하는 이유는 교회가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피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진 한 팀을 만드셨습니다.  
 
그 팀에 머물고 진정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구원된 기쁨에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인 성령으로 세워진 공동체에서 그 진리를 배우고 그 은총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우리가 교회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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