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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30 조회수 : 572

12월 30일 [성탄 팔일 축제 제6일] 
 
< 집중하는 것이 커진다 > 
 
한 번은 두 자매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다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들어갔습니다. 
손님이 없어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자매님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조금은 고급스러운 가게였습니다. 
퇴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지 스마트폰을 보던 팔에 문신한 남자가 제 머리를 깎으려 조금은 투덜거리듯 다가왔습니다. 
 
저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좋은 샴푸가 있다고 해서 한 달 정도 샴푸를 썼습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다시 노푸(샴푸를 쓰지 않고 머리를 감는다는 뜻)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동안은 기름이 많이 나와 머리가 기름졌습니다. 
대뜸 그 청년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침에 머리 안 감으셨어요?”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머리 기름이 묻는 것이 기분 나쁜지 짜증나는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만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제가 보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면 머리를 숙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처럼 그냥 그 청년에게 머리를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자매님들이 미리 계산을 다 해 놓았습니다. 
자매님들이 저를 대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샴푸를 하고 난 후엔 그 청년의 태도가 눈에 뛰게 바뀌었습니다.  
 
깊은 절을 하며 미소 띤 얼굴로 또 오시라고 인사하고, 날씨도 추운데 나와서 저희가 걸어가는 것을 뒤에서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지방 총선을 앞두고 시장님이 저희 성당 신자들에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나왔습니다. 
제가 사복을 입고 청년처럼 생겨서 그런지 시장님은 뻣뻣한 자세로 저의 폴더 인사를 받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다 신자들에게 혹시 신부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더니 다시 제 앞으로 와서 
깊은 절로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뻣뻣하게 인사를 되돌려주었습니다. 
받은 대로 되갚아줘야 하는 못된 청년이었던 것입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최고로 느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커지면 사람은 개미처럼 작아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밟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게 되는 진짜 이유는 그 사람이 정말로 큰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자신에게만 너무 집중하며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집중하면 커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마더 데레사가 천국에 갈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봤더니 
79%가 천국에 가실 것이라 대답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천국에 갈 확률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87%가 천국에 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다들 마더 데레사보다 잘 산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한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가정의 평범한 아이였고 
성전에서 남들처럼 할례를 받기 위해 봉헌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는 여인만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작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세례자 요한이 자신은 작아져야 하고 그리스도는 커지셔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작게 만드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남편과 7년을 살다가 사별하고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지냈습니다.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는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기도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으로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식하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자신의 낮은 처지를 알게 되고 
그러면 기도하게 됩니다. 
하느님밖에 의탁할 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시지만 오직 자신을 작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만 구원자로 보이십니다. 
 
우리 자신을 정결함과 단식, 그리고 기도로 작게 만들어야겠습니다. 
자신보다는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을 바라며 살아야겠습니다.  
 
사람은 딱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생각만 하는 사람과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만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은 자신이 너무 커져서 안하무인이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웃을 행복하게 해 줄까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작아져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을 때 
하느님처럼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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