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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27 조회수 : 603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요한 1서 1,1-4
요한 20,2-8 
 
< 사랑인데 사랑을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 있다 > 

어디를 보나 나무랄 데가 없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숨겨진 큰 콤플렉스가 있다면 그것은 눈썹이 정말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남편이 눈썹 없는 자신을 싫어하지나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습니다.
따뜻하기만 한 남편의 눈길이 경멸의 눈초리로 바뀌는 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삼년이란 세월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상승일로를 달리던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된 거지요.
둘은 길거리고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배달이었습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여자는 뒤에서 밀며 열심히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람이 불어와 리어카의 검댕이 연탄재가 여자의 얼굴의 땀과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고 답답했지만 여자는 얼굴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눈썹부분만은 건드리지 않고 얼굴의 다른 부분을 모두 닦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눈물까지 다 닦아준 후 다정하게 웃으며 남편은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행동에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기지 않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요한은 믿어야 구원될 수 있는데 믿으려면 반드시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서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보고 믿었다.”입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무덤을 보고 그저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무덤에서 ‘사랑’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계시지 않지만 예수님을 쌌던 수건은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시체를 훔쳐갔다면 피 묻은 수건을 그렇게 잘 개켜놓고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로 부활의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고 말합니다.
성령을 볼 수 있는 눈이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성령께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안에서 성령을 볼 수 있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요한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을 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당신을 따라오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고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하고 짧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보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요한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 믿게 만드는 것을 ‘표징’이라 합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표징이란 제물 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에서 제물을 바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그 제물을 사르고,
엘리야가 제단 위에 소를 바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그 제물을 사른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시게 만드는 것이 표징인 것입니다.  
 
그 표징이 성령강림 때 이루어졌고 그 때문에 하루에도 3천 명 이상이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에는 이렇게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그 성령의 불을 볼 수 있어야만 믿음이 생겨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숲 속 한 동네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그 강아지는 너무도 더러웠고 못생겼습니다.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맸던지 강아지는 굶주림에 거의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아지 목에 달린 이름표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주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개를 붙들었습니다.
이름표에 적힌 그 개의 이름은 ‘밥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글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 위에 머무시는 성령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하느님으로부터 온 분으로 믿고 자신도 하느님께 속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무름’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아버지께 속했다.”라는 글자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관심이 있어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표징을 보면서도 믿음에 다다르지 못하는 이유는 땅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천사들과 별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성경을 한 줄도 읽지 않고 1분도 묵상하지 않습니다.
개를 보며 먹을 생각만 하면 목걸이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쓴 복음 내내 믿으려면 그리스도로부터 하느님 사랑의 힘인 성령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온 천지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으로 가득한데도 그 사랑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눈뜬장님이 되지 않아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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