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1982년 호주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원인도 알 수 없이 양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강연하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데 특히 일부러 앞으로 넘어져서 머리와 아주 작은 다리를 이용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온 몸이 성하면서도 지금까지 넘어져 일어서지 못했던 절망의 시절을 반성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는 또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되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는 왜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을까?”
학교에 입학해 친구들로부터 신체적인 차이로 따돌림을 당해야 했고, 8살 때는 자살시도도 합니다.
그러나 15세 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며 그의 인생은 변하게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신이 있다면 나를 왜 이렇게 태어나게 했을까?’라고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요한복음 9장의 태생소경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길을 지나면서 눈이 없이 태어난 소경 거지를 봅니다.
당시에 병과 불구는 죄의 탓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상야릇한 대답을 하십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하느님의 일이 그 사람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이유가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다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발라줍니다.
그리고는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합니다.
그가 실로암에 가서 씻으니 눈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가서 없던 눈을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는 분은 분명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증언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병이 고쳐지는 것으로는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가 없어서, 하느님이 태초에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셨듯이 없던 것을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는 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분이 아닐 수 없음을 입증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수없이 읽었겠지만, 닉 부이치치에게는 15세 때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자신을 통해 절망하고 쓰러져 일어날 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게 하심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희망 전도사로서 항상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말씀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가 구체적으로 변화하게 만듭니다.
말씀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육화하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요셉과 잉태한 마리아를 어떤 집에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집, 마구간만이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불쌍한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그 보잘 것 없는 마구간은 세상의 어떤 왕궁보다도 귀한 집이 됩니다.
목자들은 물론 먼 곳에서부터 그 마구간을 찾아옵니다.
삼왕은 헤로데의 궁전에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사람이 된 그 마구간에 비하면 돌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구간이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집의 주인이 자기라고 말하며 또 다른 주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 성모님만이 자신의 집은 하느님 것이라 하며 당신을 ‘종’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이 육화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화되면 그 집은 이전의 집과 같지 않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부모님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받았던 안토니오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사 때 돈 많은 부자청년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자청년이 와서 그리스도께 완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당신을 따르면 완전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던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지만 오직 안토니오만이 그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사막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온 세상에 뿌려집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는 적습니다.
말씀은 그 받아들이는 사람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데, 이것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성모님 안에서만 온전히 사람이 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성모님만이 그 말씀을 참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가지면 감기약도 먹지 못합니다.
아기에게 나쁜 영향이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다고 하지만 남들이 하는 말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그래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수많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온전히 믿는 이에게서만 육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 제 안에 육화되었던 가장 큰 말씀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에게 붙어있는 가지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위해 이것저것 좋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저 마리아와 마르타의 경우에서처럼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만이 유일하게 필요한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시험기간에도 성체조배를 할 정도로 ‘기도만 하면 다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잘 되었습니다.
성적도 잘 나왔고, 유학 가서도 기도하면 기적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도 저는 성체조배만 꾸준히 하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도망쳤는데 일주일도 안 되어 돌아왔고, 또 다른 자매님은 그와 비슷한 남편을 용서해서 오랜만에 들어오면 따뜻한 밥도 지어서 먹여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은 극히 적었습니다.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만 육화됩니다.
저는 이번 성탄 때 이것을 콘셉트로 구유도 꾸미고 성당 트리 장식도 하였습니다.
성서 위에 아기 예수님을 모시는 구유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성당 밖에는 별 하나에서 수많은 빛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형상화 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에 말씀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모님만이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빛줄기 세 개를 성모님 위로 비추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모님 앞에 구유를 안치했습니다.
바로 그 마구간이 성모님을 뜻하고 그 안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이 말씀을 받아들인 성모님의 마음 안에 육화되신 말씀을 형상화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보고 복되다고 하십니다.
행복한 이유는 바로 ‘믿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번 성탄 다만 성경 한 구절이라도 내 안에서 육화되게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베들레헴 집들처럼 또 한 해가 참 주인이 없는 슬픔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마구간이 됩시다.
성모님의 가난한 마음을 닮읍시다.
행복이 우리 안에 육화되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빈 곳을 채울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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