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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24 조회수 : 559

12월 24일 화요일 
 
사무엘 7. 1-5.8.12.14.16
루가 1. 67-79 
 
< ​사람을 만나기 부담스럽다면 그때 만나라 > 


아주 먼 옛날, 앞을 못 보는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눈을 뜰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이 소문을 들은 부엉이 한 마리가 어느 날 밤 소경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말하였습니다.
“아저씨, 난 아저씨의 소문을 듣고 아저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나는 밤에만 활동하니까 낮에는 눈이 필요 없거든요.
그러니까 낮 동안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게요.
그러나 밤에는 꼭 돌려주셔야 돼요.” 
 
다음날 아침 소경이 깨어보니 환한 세상이 그의 눈에 보였습니다.
소경이 뛸 듯이 기뻐하며 눈을 빌려준 부엉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부엉이와 생활을 하며 낮에는 소경이, 밤에는 부엉이가 눈을 달고 먹이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소경의 마음에 은근히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부엉이와 눈을 함께 쓰는 바보가 어디 있담.’ 
 
소경은 부엉이가 잠든 낮에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눈이 희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더듬거리며 부엉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저찌, 난 밤에 먹이를 찾지 못해서 굶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 눈도 기운을 잃은 것이에요.” 
 
가엾은 부엉이는 이 말을 마치고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다시 소경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에게 “부모라면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마음이 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방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는 ‘계약’입니다.
관계가 계약인 것을 아는 사람만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여긴다면 남의 땅을 빼앗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땅을 가지려면 그만한 액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계약입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의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이 구원되려면 인간이 하느님임을 믿게 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하느님임을 믿을 수 있었다면 굳이 하느님이 되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더라도 아버지께서 당연히 용서하실 것임을 알아 숨을 필요도 없고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이웃을 심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아 아버지 집에서 살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양식으로 주시며 우리도 당신 자녀임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밥그릇인 말구유에 놓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아버지와 함께 계신 것이 제일 편안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양식이 되지 않으면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셔 십자가에 수난하시고 인간의 양식이 되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나러 오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그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부담스럽지 않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내어주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는 내어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밀떡과 포도주도 내어주지 않으면서 성체성혈은 당연하게 받아도 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선악과는 십일조입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도 내어줄 마음이 없으면서 오시는 예수님만 기다리면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지도 않고 성체성혈만 달라고 보체는 격입니다. 
 
새로 태어나실 그리스도를 볼 때,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받아 모실 때, ‘나는 무엇을 드려야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모기나 기생충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들을 만날 때 부담스러워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면 그때 만나라고 충고합니다.
그만큼 내가 그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상대를 이용하지 않고 온전한 계약의 관계로 보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만을 위하면 상대를 이용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상대의 행복만을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도 그래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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