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대림 제3주간 토요일]
< 은총을 받으려면 주님 뜻의 피난처가 되어라 >
복음: 루카 1,39-45
텍사스 시스코의 한 호텔 방에서 한 젊은이가 절망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탁자에는 하얀 색 알약 수 십 알이 널려 있습니다.
한참 몸부림을 치던 젊은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느님, 어릴 적 어머니께서 ‘세상 사람은 모두 널 잊고 버려도 하느님은 널 잊지 않으신다.
그 분은 너에게 참 피난처, 요새가 되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피난처 되신 하느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눈을 떴습니다.
무엇인가 결심한 듯 두 주먹을 꽉 쥔 채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투자자 여러분, 여러분이 투자하신 그 귀한 돈을 다 날리고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을 뵐 면목이 없어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사서 호텔에 투숙했다가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 하느님이 저의 피난처이시라는 말씀이 생각나 밤새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이 자리에 용기를 얻어 나타났습니다.
한 번만 용서하시고 상환을 유예해 주시면 원금과 이자 모두를 쳐서 갚겠습니다.”
그 후, 투자자 가운데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본 두 명의 투자자가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습니다.
그의 새로운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의 창업자 N. C. 힐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피난처로 여기는 이들을 또한 당신의 피난처로 여기십니다.
하느님을 피난처로 여기는 길은 하느님의 뜻 안에 숨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 뜻을 품을 때 하느님의 피난처로 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품을 때 하느님께서도 내 안에 숨으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주려는 사람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해 그 사람 안에 피신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이때 성모 마리아를 통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전 세계에 엘리사벳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엘리사벳만이 하느님의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이 품은 하느님의 뜻이 태중의 요한입니다.
은총은 아무에게나 흘러가지 않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모 마리아를 요한을 통해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장차 당신 길을 닦을 세례자 요한에게 성령을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은총의 통로인 성모 마리아를 통해 엘리사벳에게로 향하신 것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기쁨입니다.
성령께서는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을 향해 오셨습니다.
엘리사벳은 하느님의 뜻을 품고 있었고 하느님의 뜻에 영양분을 주기 위해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을 품고 있는 엘리사벳에게로 향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품은 사람에게 은총이 모이기 때문에 모든 축복을 받고 기쁨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작은 물들이 계곡으로 모이고 그 계곡이 시냇물을 형성하며 그 시냇물들이 모여 커다란 강을 이루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넘쳐납니다.
우리 각자도 하느님의 뜻이 모이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이 향하려고 하는 바다를 향해 자신을 깎는 아픔을 참아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내 뜻을 포기하면 나는 하느님의 뜻이 흐르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면 나도 기쁘고 이웃도 기쁩니다.
모든 축복은 세례자 요한처럼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로 이끌려는 사람에게로 모입니다.
나의 삶이 우울하다면 나의 삶의 목표가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것이었는지부터 살펴야합니다.
엘리사벳이 성모 마리아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오시는 성령님을 전해주시러 찾아오시도록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길을 닦으려는 뜻을 품었듯이
우리 마음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으려는 마음을 품으면 주님께서 주시려는 모든 은총을 충만히 받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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