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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20 조회수 : 480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이사야서의 7,10-14
루카 1,26-38 
 
< 사람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마음에 하느님 뜻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살펴라 > 

“만약 내가 돈이 없는 아주 가난한 여자여도 나랑 결혼 할 수 있나요?”
유지연이라고 하는 준재벌집의 외동딸의 이야기입니다.  
 
TV에서 보는 재벌 딸은 예쁘고 날씬하지만 그녀는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습니다.
그녀에게 접근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집의 재산을 노리고 옵니다.
그래서 지연씨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맞선을 봅니다. 
 
신준호라고 하는 한 남자가 집의 재산에 대하여는 물어보지도 않고 귀여운 상이라며 호감을 나타냈습니다.
며칠을 만나고 “만약 내가 돈이 없는 아주 가난한 여자여도 나랑 결혼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남자는 대답합니다.
“당연하죠, 돈이 얼마나 많으신지 모르지만 난 지연씨를 사랑하는 거예요.
돈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게요.” 
 
둘은 결혼에 골인을 합니다.
많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성당에서 혼인을 했습니다. 
 
준호는 열심히 일을 해보지만 잘 안된다며 사업을 해보겠다고 지연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지연은 부모에게 청해 사업자금을 얻어주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를 해 보았지만 준호의 사업은 계속 망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터져 지연 부모의 사업도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다음 날 저녁 준호는 ‘이혼서류’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놀란 지연씨에게 준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집 부도라며?
나 사실 널 사랑한 적 한 번도 없어.
씨름 선수 같은 너를 진짜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지연의 아빠, 엄마가 안방에서 듣고 있다 문을 박차고 나옵니다.
부도가 났다고 말한 것은 거짓이었습니다.
준호는 처음부터 지연의 가족을 알고 그 집 재산을 노렸던 것입니다.
돈을 도박과 술로 탕진한다는 소식을 접한 지연의 부모가 꾸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연은 미련이 남는지 “정말 단 한 번도 날 사랑한적 없나요?”라고 묻습니다.
[참조: ‘단 한 번도 널 사랑한 적 없어’, 유쾌한 공주, 다음 카페] 
 
어떻게 속지 않고 참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헤어지더라도 “나 너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을 자신이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그 사랑이 진심일 수 없습니다.  
 
사람은 상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본성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주체가 자신인 사람은 상대를 이용해 무언가 자신을 채우려는 마음으로 만납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처음엔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사라졌을 때 ‘아, 난 저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가진 것을 사랑했던 거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나 당신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라고 솔직하게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라 믿는 사람은 진실한 사랑이란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모기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이웃을 볼 때 이용하려고만 하지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의 힘으로 사랑이 가능했다면 예수님께서 구원하러 오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그 사랑을 배운 첫 번째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는 내용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하느님 뜻을 향한 ‘아멘!’이 세상에 구원을 오게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성모 마리아만큼 세상을 사랑하신 분이 없습니다.
어떤 누구도 세상에 구원을 불러올 수 있도록 하느님 뜻에 항상 마음이 열려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원죄의 티까지도 없으신 성모 마리아만이 당신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만이 당신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제외하고 세상에서 보여진 가장 큰 사랑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사랑의 힘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데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결혼을 포함해 모든 관계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주의하십시오.
자기가 주체가 되어 맺고 끊을 수 있는 관계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입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맺어진 관계는 싸우더라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가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사랑은 곧 하느님의 뜻임을 알아야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사람에겐 이용당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임을 믿는 사람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 뜻이고 소명입니다.
하느님 뜻이라고 행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지만 내 힘으로 하는 모든 것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고 남을 이용하는 행위가 됩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관계라고 믿으면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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